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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유튜브와 뉴욕타임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 여당의 총선 참패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일부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퍼센트 언저리에 머물 정도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간 대통령과 여당에 비교적 호의적이던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조차도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불통, 무능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듯, 대통령 때리기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중앙일보의 김현기 논설위원은 ‘차기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칼럼으로 화제가 됐다. 차기 대통령으로는 첫째, 이른바 ‘갑튀 후보’, 즉 오랜 검증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온 후보는 뽑지 말자. 둘째, 건들건들하지도 말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국민을 얕잡아 보지도 않는 ‘올바른 태도’를 지닌 인물을 뽑자. 셋째, 지지층의 결집을 촉구하는 지도자 말고 확장을 호소하는 지도자를 뽑자. 극단적인 유튜브의 확증 편향적 정신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유튜브가 아니라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는 지도자를 뽑자. 그리고 기왕이면 배우자 관리도 잘한 지도자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여야 지도자를 모두 겨냥했지만, 특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검증 취재 없이 막말·주장·의혹 중계
유튜버 등장 전부터 정치 뉴스 퇴행
보도 관행 맞춰 정치인 행태도 타락
타성에 갇힌 언론, 후진적 정치 ‘원죄’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의 정치적 난맥상의 한 요인으로 정치 지도자가 접하는 언론 매체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바로 유튜브 정보가 갖고 있는 편협성, 정파성, 무책임성이 정치인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양상이 현재의 정치 지도자상에도 투영된다는 인식이다. 과연 그럴까?
유튜브와 뉴욕타임스는 여러모로 저널리즘에서 서로 대척점에 있는 정보 매체들이다. 뉴욕타임스는 뉴스 선정에서 인기와 무관하게 중요도와 파급 효과가 큰 기사를 고수한다. 아무리 고위직의 발언이라 해도 다양한 출처를 통해 철저하게 교차 확인, 검증하지 않고 내보내는 일은 드물다. 심지어 의견 기사인 칼럼에서도 방대하고 철저한 취재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기사를 쓸 때에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단어 선택에서도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언론이라기보다는 다만 저널리즘의 직업 규범을 좀 더 철저하게 준수하는 권위지의 한 사례일 뿐이다.
반면에 유튜브는 저널리즘의 이 모든 규범을 무시하고 사실 규명보다는 의혹, 분노, 공감, 상상 등의 정서적 반응을 유발해 이용자의 화제와 관여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진실 규명이 아니라 화제성의 극대화이기에 뉴스의 근거와 윤리적 규범은 아예 무시한다. 오늘날 파워 유튜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근거 없고 무책임한 정보 확산이 정파적 균열과 갈등을 초래할 위험성도 덩달아 증가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정치 뉴스는 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정치 보도는 뉴욕타임스보다는 유튜브에 훨씬 더 가깝다. 정치 뉴스는 정치인의 막말, 허위 주장, 신변잡기, 의혹 제기 등 서구의 타블로이드 신문에나 적합할 만한 온갖 내용으로 채워지는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갈등이나 의혹은 늘 반복해서 등장할 뿐 실제로 취재를 통해 규명되는 일은 드물다. 유튜버가 등장하기 오래전에도 정치 뉴스에서는 ‘타블로이드화’, ‘유튜브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더불어, 다른 부문에서는 혁신의 시도가 계속 나오는 가운데서도 정치 보도는 오래전의 낡은 관행을 꿋꿋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신생 매체인 유튜브가 이런 식의 작업을 훨씬 더 잘 수행하면서 정치 보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뉴스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한국 언론에서도 가장 낙후된 공룡 같은 존재다.
언론 보도는 정치인과 정치 관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식의 퇴행적 정치 보도는 정치인들의 행태까지 타락시킨다. 정치 보도가 국가의 미래 비전이나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인의 신변잡기, 자극적 막말이나 일방적 주장 중계에만 주력하는 바람에, 어느새 정치인의 행태 역시 이에 맞게 진화했다. 심지어 신인 정치인들조차 기성 정치를 모방해 허언이나 막말로 주목 끌기에 앞장서는 것이 현재의 한심한 현실이다. 만약 주류 보수 언론들이 윤석열이라는 아마추어 대통령의 탄생에 개탄하는 게 진심이라면, 이들 역시 기존의 타성에 갇혀 제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정치적 원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현재의 정치 보도 관행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제2의 윤석열 대통령이 배출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앞서 한국 정치인의 후진성을 비판한 언론인에게는 오래전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너나 잘 하세요.”
2024-06-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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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선원의 날, 선원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법
근로자의 날로 시작된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을 축하한 뒤, 바다의 날로 막을 내렸다. 이에 비해 6월은 현충일과 6·25전쟁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있어 엄숙한 느낌마저 드는 달이다. 이런 6월에 새로운 법정기념일로 ‘한국 선원의 날’이 지정된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0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선원의 훈련과 자격 증명 및 당직 근무의 기준에 관한 국제 협약(STCW) 개정을 위한 외교 회의에선 6월 25일을 ‘세계 선원의 날’로 정하고 UN으로부터 국제기념일로 승인받았다. 지정결의서에는 선원들이 ‘국제 해상무역, 세계 경제와 시민사회에 끼치는 특별한 공헌’을 인식할 목적으로 세계 선원의 날을 지정함과 아울러, ‘각국 정부, 해사 단체, 해운기업, 선주와 해사 관련 당사자들이 적절하게 기념하고, 의미 있게 축하하려고 조처할 것’을 장려했다. 우리나라 대표단은 이 회의에 참석해 6월 25일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임을 상기시켰지만, 결의서가 채택된 이날이 세계 선원의 날로 지정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양수산부로서도 6·25전쟁 발발일에 선원의 날을 기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후 10여 년, 세계 선원의 날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수밖에 없었다.
2024년은 선원 해외 취업 60주년
자료 소실되고 작고한 선원도 많아
역사 수집·정리하는 일 늦춰선 안 돼
부산 북항에 기념관·역사관 지어야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 선원법이 개정되면서 ‘6월 셋째 주 금요일’을 법정기념일인 ‘한국 선원의 날’로 지정했다. 지난해에는 6월 23일 첫 기념행사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성대하게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오는 21일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대강당에서 ‘새로운 시작, 당신의 위대한 항해’를 주제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 행사 외에도 15일부터 21일까지를 선원 주간으로 지정해 승선 체험, 걷기 대회, EBS 다큐멘터리 방송, 제1회 선원 페스티벌 등이 펼쳐진다. 지난해 기념행사만 치러진 것과 비교하면 좀 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선원의 날을 제정한 것이 단순히 기념행사를 여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선원들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한 바를 온 국민이 기억하고 기리자는 데 기념일을 제정한 본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선원을 기념하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선원들이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이바지한 바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한국 선원 사회와 국립한국해양대학교의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해외 선박 취업이었다. 1964년 2월 10일, 2700톤급 일본 교세이(協成) 기선의 선박 관리 회사인 홍콩의 퐁씽선무(豊誠船務)의 룽화(Loong Wha)호에 김기현 선장과 이상래 기관장 등 28명의 선원이 승선한 것이 해외 취업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한국 선원의 저렴한 인건비와 근면·성실함을 확인한 일본의 산꼬기센과 K라인, 미국의 라스코와 MOC 등의 선사들이 우리 선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천경해운과 대한해운 등이 창업 초기 선원 송출 사업으로 기틀을 다질 수 있었고, 수많은 선원 송출 회사와 부산항이 호황을 누렸으며, 그로 인해 조선산업, 선박수리업, 급유업과 선식 공급업 등이 연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24년은 우리나라 선원의 해외 취업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제1회 선원의 날 기념행사보다는 선원 해외 취업 60주년이 훨씬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일이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해외 취업선과 관련한 자료들이 소실되고 있고, 초기 해외 취업선에 승선했던 많은 선원이 작고한 상태다. 다행히도 제1호 해외 취업선인 룽화호에 기관장과 항해사로 승선했던 선원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 해외 취업 선박에 승선했던 분들의 역사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선원을 기념하기 위해 해야 할 두 번째 일은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 그들이 우리 사회와 국가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이나 기념관을 만드는 일이다. 파독 근로자를 기념하는 전시관은 서울과 동해, 그리고 남해에 각각 조성돼 있다.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파독 취업은 15년(1963~1977) 정도 이어졌지만, 선원의 해외 취업은 오늘날까지 60년(1964~현재) 이상 지속되고 있다.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대 무역항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원들의 모항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현재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선원 기념관이나 역사관이 지어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선원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한국해기사협회,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해운협회, 해양수산부는 의례적인 행사로 선원을 기념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선원을 기념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2024-06-0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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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젊은 기자들은 왜 떠나는가
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고 있다. 언론 고시라는 높은 벽을 뚫고 기성 언론사에 입사한 우수하고 유능한 인재들이다. 기자 지망생도 감소하고 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던 언론인이라는 직종이 채용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들은 왜 언론을 떠나는가?
중앙일보·JTBC 노보에 따르면 3월 현재 올해 퇴사를 결심한 기자가 8명이다. 이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5년에 불과했다. 조선일보 노보는 지난 10년 사이 조선일보에 입사한 기자 106명 중 40명이 퇴사했다고 밝혔다. 저연차 젊은 기자들의 40%가 다른 길을 찾아 언론사를 떠난 것이다. 언론사가 ‘이직 사관학교’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언론계에서 나올 정도이다.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노보는 지난 1년 사이 10명이 퇴사했다고 밝혔다.(월간 〈신문과 방송〉 5월 호)
최근 젊은 기자들의 퇴사 러시는 위기의 언론계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언론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평판, 그리고 언론 조직 내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언론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젊은 층 퇴사 러시 언론사 위기 가중
시대 뒤처진 조직 문화·취재 관행 탓
새 경영 트렌드 '직원 경험' 도입해야
성장 체험 축적·역량 향상 기회 필요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경쟁 매체의 증가와 다양화는 위기의 외부 요인으로 작용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뉴스 유통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외부 환경 변화가 대표적이다.
언론이 직면한 불신의 굴레는 언론의 영향력과 위상의 추락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취재 관행들은 뿌리 깊은 언론사 내부적 문제로서 위기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특히 최근 젊은 인재들의 퇴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어 세심한 관찰과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
언론계를 막론하고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겪는 경험이 누적되어 퇴사를 결정짓는다. 다수의 조사는 연봉보다는 근무 환경이나 직장 내 인간관계가 퇴사 결정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한 직원이 입사 지원 순간부터 퇴사 시까지 겪는 모든 경험을 말하는 직원 경험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경영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직원 경험이 긍정적인 직원들은 그렇지 못한 직원들에 비해 직장 만족도와 참여도가 높으며, 직원 참여도가 높은 기업은 수익성과 생산성이 최소 20% 이상 더 높다. 긍정적인 직원 경험이 직원 유지와 비즈니스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조기 퇴사의 흐름에 맞서기 위하여 언론 기업의 리더들이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기자들의 긍정적인 성장을 위한 탁월한 직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언론사에서, 특히 저연차 기자들은 취재 업무 성격상 소모품처럼 쓰이며 심각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에 빠진다. 이들은 언론 본연의 비판과 감시라는 사명과 역할을 채 배우기도 전에 탈진 상태에 좌절한다.
언론 기업은 기자들에게 유연하고 적응 가능한 업무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도록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파악하는 정례 미팅과 같은 시스템 도입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사는 연차 단계별 교육 기능을 체계화하고 재설계하여야 한다. 데스크 담당자 이상 직급자에 대한 교육 체계 구축을 통해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리더십 기술 향상이나 팀원과 소통하는 방법 팁 등 평기자들에 대한 동기 부여와 회사의 지침 전달에 능통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을 제공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 저연차 기자들이 긍정적인 직무 경험을 축적하고, 업무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 사회적 평판, 내부적 요인이라는 삼중고에 처한 언론이 젊은 기자들의 퇴사를 막기 위한 첫걸음은 조직 내부적 요인의 점검에서 출발해야 한다. 저연차의 젊은 기자들이 퇴사하는 이유가 소속 언론사가 배움과 성장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은 아닌지 언론 기업의 리더들은 성찰해 봐야 한다. 기업의 성공 지향이 아니라 성장 지향의 직원 경험이 우선시되는 조직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직원 경험이 직원 유지와 비즈니스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2024-05-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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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광고가 미디어를 집어삼키나
최근 SBS 드라마 ‘모범택시2’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드라마 내에서 특정 건설사 이름과 홍보 내용을 지나치게 부각해 ‘간접광고’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점이 사유였다. 드라마에 등장한 이 건설사는 남자 주인공이 광고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더욱 큰 논란이 됐다. 또한 특정 건강 제품의 효능을 홍보하는 내용이 버젓이 출연자들의 대사로 나왔다는 점도 제재 사유로 지목됐다. 간접광고는 이른바 PPL이라는 이름으로 이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텔레비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는 드라마 내용과 광고 간의 구분을 흐린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추세다.
드라마에 특정 상품을 슬쩍 노출하는 수준을 넘어 대놓고 강조하는 바람에 드라마의 흐름을 깨뜨리고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다. 몇 해 전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는 특정 자동차 회사 브랜드가 과도하게 자주 나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주인공이 특정 자동차를 모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이다. 아예 드라마 속의 남녀 커플이 뜬금없이 자동차 전시장을 방문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이는 오직 광고를 위해 스토리와 무관하게 억지로 끼워 넣은 에피소드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유명 배우까지 대거 출현한 대작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지나친 간접광고로 스토리가 엉망이 되어 흥행을 망친 작품도 있었다.
드라마 속 PPL 수위 지나쳐 제재
기사 형식 ‘신제품 소개’도 증가세
보도·콘텐츠와 광고 간 경계 소멸
매체 존립 기반 무너뜨리는 행위
광고와 콘텐츠 간의 구분 소멸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부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사형 광고’나 ‘광고성 기사’인데, 이는 기사 형식으로 위장한 사실상의 광고라고 할 수 있다. ‘신제품 출시’나 ‘기술 혁신형 상품’ 관련 정보가 기사형 광고의 전형적인 소재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순수한 광고보다는 기사가 독자의 신뢰를 얻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당연히 광고의 기사화를 선호한다. 이 기사 게재의 조건으로 억대의 대가가 오가기도 하기에 재정이 취약한 회사일수록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의 기사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일방적 주장에 입각해 작성된 것으로, 독자를 기만하고 판단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어 심각한 직업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광고형 기사 실태에 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폐해의 정도를 판단하긴 어렵다. 그런데 2019년 뉴스타파는 광고자율심의기구의 제재 내용을 근거로 일간신문사의 기사형 광고 게재 실태를 조사했다. 소규모의 조사였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 결과 예상과 달리 조중동과 경제지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해 기사형 광고 범람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의 순으로 기사형 광고로 제재를 많이 받았고, 메이저 회사들의 게재 건수를 합산하면 전체 건수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조사 시점 기준으로 기사형 광고의 제재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심의기구 관계자에 의하면 아주 극단적이고 명백한 위반 사례만 집계했기 때문에, 실제 위반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의 간접광고나 신문의 기사형 광고는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 허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윤리 위반 형태다. 하지만 이러한 위반 행위가 초래하는 해악은 기사형 광고에서 더욱 크다. 드라마는 현실을 모사하긴 해도 어차피 허구의 세계를 다룬다. 간접광고는 드라마의 작품성을 훼손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해칠 뿐이다. 반면에 기사는 현실을 정확하고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그래서 허구나 과장에 불과한 광고를 현실의 반영인 기사로 위장하는 것은 체계적인 속임수라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유형을 막론하고 미디어에게 광고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물론 시청자나 독자가 유익하고 흥미로운 드라마와 뉴스를 공짜로 누릴 수 있게 된 데는 광고의 공이 매우 크다. 하지만 광고는 남용하면 미디어의 건강에 치명적인 마약이 될 수도 있다. 방송심의규정이나 언론계 윤리규정이 광고와 기사·콘텐츠의 엄격한 구분을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일종의 유행병처럼 광고와 기사, 광고와 콘텐츠 간의 구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미디어 시장이 일종의 ‘머니 게임’으로 변질하면서 그만큼 경영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광고와 기사의 엄격한 구분은 미디어의 근간인 신뢰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디어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빠져든다면, 이는 곧 자신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2024-04-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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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고등어는 수산업의 희망!
봄이 되면 입맛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봄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봄이 되면 생리적인 피로감, 춘곤증으로 입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럴 때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있다. 달콤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각종 봄나물과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고등어구이는 떨어진 입맛을 되돌리는 데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무엇보다 고등어는 보리처럼 영양가가 뛰어난 데다 쉽게 구할 수 있고 값도 저렴해 서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어종이다. 우리 민족이 고등어를 즐겨 먹은 역사는 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황해도, 함경도 지방의 토산물로 기록돼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지방의 토산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밥상에 오른 고등어는 지금은 우리나라 제주 인근 해역에서 많이 잡힌다. 주로 대형선망 어업으로 잡는데, 선망은 어군(魚群)의 존재를 확인한 뒤 이를 포위해 잡는 어망을 총칭하는 말이다. 본선과 2척의 등선, 3척의 운반선까지 모두 6척이 선단을 이루는데, 본선은 고등어를 찾는 역할을 하고 등선은 불을 밝혀 고등어 떼를 모은다. 어군에 그물을 던져 잡은 고등어는 운반선을 통해 항구의 위판장으로 간다. 주로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잡은 고등어의 90% 이상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향한다. 고등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붉은 살이 많고 지방질도 풍부해 쉽게 부패하는 특성이 있어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선도 유지의 관건이다.
대형선망들은 다음 주부터 두 달간의 휴어기를 갖는다. 해양수산부는 산란기의 어미 물고기와 성장기의 어린 물고기 보호를 위해 총 44종에 대해 금어기를 규정하고 있다. 고등어의 올해 금어기는 이달 23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로 돼 있지만 대형선망들은 기간을 조금 더 보태 6월 22일까지 휴어기로 정했다.
연근해의 어획 고등어 대부분이 모이는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고등어로 가장 유명한 도시다. 2011년부터는 고등어가 부산을 대표하는 시어(市魚)로 지정됐다. 어획 고등어의 90% 이상이 부산공동어시장을 거쳐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고 접근성도 좋다 보니 고등어 가공 업체도 50여 곳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산 고등어 맛을 쉽게 볼 수 없다. 식당과 마트는 이미 노르웨이산 고등어에 의해 점령된 지 오래다. 노르웨이 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노르웨이 고등어의 한국 수입량은 1만 6867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노르웨이 고등어의 국내 점유율은 매년 늘고 있다. 노르웨이가 고등어 수출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차갑고 청정한 바다 환경을 비롯한 기술력, 젊은 어업인 육성 등 국가적 차원의 연구와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수산물 유통의 허브인 부산공동어시장은 시설 노후화와 비위생적인 유통 환경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1963년 개장한 공동어시장 시설은 곳곳이 낡았고 경매 시스템도 60년 전의 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은 대형선망 소속 선단들이 부산을 이탈해 다른 위판장으로 가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한림, 경남 남해와 삼천포, 통영, 전남 진도 등 5~6곳의 위판장으로 선단이 옮겨갔다. 지자체들도 다양한 지원을 약속하며 대대적인 유치 노력을 벌이는 중이다. 전남 장흥군은 136억 원의 위판시설투자와 콜드체인 물류시스템 구축 등을 약속하며 대형선망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부산 수산업계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수협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직접 생산 유발액 4580억 원, 유통가공이나 기자재 등 후방산업까지 포함하면 연간 최대 1조 원의 산업가치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동어시장의 경매량이 위축되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아프리카 시장에서 국산 고등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산 수입 제재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인한 외부효과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이 저렴하고 풍부한 단백질 등 맛도 좋은 국산 고등어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처럼 새로운 해외 시장의 개척은 국내 수산업계의 발전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고등어 도시’인 부산은 이런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공동어시장의 현대화 사업을 서둘러 시작해 위판·물류 자동화시스템과 전자거래 도입, 비대면 경매체계 구축 등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고등어를 대하는 방식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탈피해 부산 수산업의 미래가 달린 성장 산업으로도 키울 수 있음을 유념해 볼 때가 됐다.
2024-04-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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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 꼭 이뤄지길
중국 고사에 ‘화이부실(華而不實)’이라는 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겉은 화려한데 실속이 없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도 맥락이 같다. 여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을 보면서 든 생각이 딱 그랬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은 역시 헛구호일까.
선장 출신의 해양법학자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권 여당의 ‘영입 인재’로 발탁됐을 때 전국의 상당수 해양수산단체는 이를 환영했다. 십시일반으로 예산을 모아서 지지 의견 광고를 신문에 싣는 일부 단체도 있었다.
해양산업 관련 의제·범위 대폭 확대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 위해서는
특정 부서 넘어 범국가적 기획·관리를
해양수산업계 출신이 국회의원이 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당 비례대표로 해양수산 전문가가 선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해양에 대한 정부 여당의 인식 변화로 받아들이는 해양수산인이 많았고, 필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여당의 정책 분야 인재로 영입된 김 교수는 붉은색 정당 점프를 입고 꽃다발을 건네받으면서 “해양산업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15%나 된다. 그 비중만큼만이라도 해양수산 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게 되면 우리나라 해양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선장으로 있다가 교수가 됐다. 고려대에선 석탑강의상 4차례, 안암연구상 3차례나 수상한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법학자다. 연구와 강의 성과만으로도 해양 전문가로 충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학자들과 달리 현장에 늘 발을 둔 실천가라는 대목에서 그는 더 돋보였다. 그는 현장 방문을 즐겼고, 그곳에서 크고 작은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기업가이든, 노동자이든 가리지 않았고, 각종 칼럼 쓰기와 좌담회 참여 등을 통해서 해양인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전했다.
그러나 아쉽다. 해양수산인의 열망과 기대는 여기까지였다. 그는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어렵게 선택됐지만, 그가 받은 배정 순위로는 당선권에 턱걸이하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화이부실이 되었다고나 할까. 김 교수는 결국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책 분야 인재로서 그의 역할은 유효하다.
총선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지역구 254명과 비례대표 46명, 즉 300명의 새로운 국회의원이 곧 탄생할 것이다. 국민 선택이 어떤 정치적 지형도를 그려낼지 짐작할 순 없다.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해양수산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정치를 통한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역할 찾기에 나선 그의 도전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참에 정부 여당에 재촉구한다. 대통령 직속의 가칭 ‘해양위원회’ 설치를 검토해 달라. 필자는 앞선 칼럼(〈부산일보〉 2023년 6월 12일 자 ‘오션 뷰’)에서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이 수없이 많겠지만 지금의 해양산업은 해양수산부라는 단위 부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하고 다양해졌다.
해양산업의 정의부터 과거와 달라졌다. 해운, 항만, 수산으로 단순히 구획 정리할 수 없다. 해양과학, 해양자원, 해양경계, 해양관광, 해양환경, 해양물류와 기후 문제 등 해양과 관련된 의제와 범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게다가 해양공간은 더 이상 해양수산부 인력과 정책, 정보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영역이 되고 있다. 각종 정책을 다부처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기획하고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사전 조정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 해양공간은 특정 부처가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기획되고 관리돼야 한다.
국가 경제와 수출 정책의 사활이 걸린 ‘탄소 중립’만 해도 해상풍력을 포함한 해양공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탄소 중립’은 지금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 중 하나다. 실제로 이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크고 현재적이다. 대한민국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에 대해 노광장비 독점 기업 중 하나인 네덜란드 ASML사는 이미 생산품뿐 아니라 사용한 모든 전력에 대해 ‘탄소 중립’을 시한부로 강제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반도체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수 있다는 경고다.
지금으로선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 해상풍력을 시급히 개발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선 해양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재배치해야 한다. 부처 간, 중앙-지방정부 간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요청하는 이유다.
‘해양’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새로운 인식 전환을 재촉구한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은 결단코 헛구호가 아니다.
2024-03-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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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선거는 언론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며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은 지대하다. 언론은 선거보도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여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들은 여느 때보다 정치 기사에 평균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고, 정치인은 민심을 살피고 표심을 얻기 위해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선거에서 언론의 자유만이 최선의 덕목이 아님은 자명하다. 언론이 강한 영향력을 가진 만큼 언론의 선거보도는 규제의 대상이 된다. 언론이 보도의 자유라는 권리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방지 조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표일에 근접한 시기에 한 건의 검증되지 않은 의혹 보도가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는 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선거에서 불공정 보도에 대한 조치는 신속하게, 과하다 할 정도로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선거보도는 언론에게 한편으로 하나의 도전이다. 선거보도가 유권자 개개인들에게 독자적인 의견 형성을 위하여 포괄적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며, 다양한 정당의 차이 나는 목소리에 적정하게 대응하는 균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선거보도는 언론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언론이 공정한 선거보도를 통해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유권자인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각 언론사들이 선거 때마다 선거보도 준칙을 마련하여 객관성, 공정성, 형평성을 전면에 표방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언론은 선거보도 준칙을 통해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보도, 적극적인 검증 보도, 그리고 유권자 및 정책 의제 중심의 보도를 약속한다. 언론에 부여된 역할과 준칙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보도에서 언론은 여전히 구시대적 관행을 답습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정파적 편향성을 당연시하는 듯한 보도 태도, 사당화 행태와 같은 불공정성에 대한 방관자적 태도, 저품질의 천박한 선정주의가 만연하다. 이 같은 현상의 근저에는 당장 버려야 할 보도 관행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첫 번째 관행은 흥미 위주의 일화 중심 보도 행태이다. 후보자의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벌어진 사건, 사고를 단순 중계식으로 보도하는 기사들은 후보자의 주장으로 가득하다. 제목의 따옴표 인용 처리 관행은 소위 ‘제목 장사’를 의심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외쳤다’, ‘비판했다’, ‘지적했다’, ‘비꼬았다’ 등 시종일관 후보자가 주장한 인용문으로 가득하다. 정작 기자 스스로의 관점은 한 문장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기사가 즐비하다. 말실수와 같은 주변적인 돌발 이슈를 부각시키는 일화 중심 보도 행태는 선거를 흥밋거리로 전락시킬 수 있어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두 번째 관행은 선거를 스포츠 경기나 전쟁 취급하는 보도 태도이다. 격전지, 벨트, 수세, 공방, 공세 등의 군사 용어와 한판 승부, 뒤집기, 추격전, 난타전 등과 같은 스포츠 용어의 사용은 부적절하다. 선거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으므로 일반적이고 품격 있는 언어로 순화해야 한다.
세 번째 답습하고 있는 관행은 지나치게 여론조사 결과를 부각시키는 보도 태도이다. 선거를 결과 지상주의화할 수 있으며,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를 자극하여 결과적으로 민심을 왜곡할 수 있다. 판세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보도 태도를 보이다가, 선거 후에는 상이한 결과로 판명된 여론조사 내용에 대해 어떤 책임도 반성도 없는 행태는 더 큰 문제이다.
언론은 선거보도에 있어서 보도의 자유라는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 의식을 새겨야 한다. 언론 선거보도의 본질은 공명선거를 위한 감시 활동,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돕는 것, 선거를 활발한 공론의 장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정치권의 구태만 지적하고, 언론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유권자의 성숙한 정치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로 인식된다. 언론은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정치보다 더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이나 유권자만 바라보지 말고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선거 시기의 도전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 관행을 하나씩 타파해 나가야 한다.
2024-03-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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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항만 정보화, 왜 이렇게 힘들까
부산항에는 정말 많은 이해 당사자가 존재한다. 수출입 화주, 물류 회사, 트럭 운송사, 철도 사업자, CIQ(세관, 출입국 수속, 검역) 기관, 항만 현장 노동자(항운노조), 컨테이너 부두 운영사, 선사, 항만 부대 서비스 제공자(예선, 도선, 급유, 급수 등), 항만 당국 등 여러 주체가 만나고 부딪히며 상호 작용을 한다. 화주(화물의 주인)나 물류 회사는 컨테이너 화물의 수출 정보를 세관과 항만 당국에 신고하고 트럭 운송사 혹은 철도 사업자를 통해 항만에 가져다 놓는다. 트럭 운송사는 부두 운영사 측에 화물 도착 정보를 보낸다. 화물이 들어오면 부두 내 항만 노동자와 각종 기계 장비의 도움으로 선사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선박에 선적된다.
화물 선적을 완료한 선박은 부두를 떠나면서 줄잡이, 예선, 도선의 도움을 받아 출항을 한다. 바다를 건너 목적지 항만에 다다른 선박은 항만 당국에 입항 신고와 더불어 양하 또는 선적에 필요한 컨테이너 화물의 다양한 정보(양적하 물량, 최종 목적지 등)를 미리 부두 운영사에 전송해 신속하게 양적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또 선박이 정박해 있는 동안 급유나 급수, 혹은 선내 필요 물품을 공급받기 위해 항만 부대 서비스 제공 사업자에 도착 일정과 필요량도 미리 보낸다.
부두 내 이해관계사 정보 공유 체제 'PCS'
세계은행, 세계 우수 3곳 중 부산항 선정
뉴욕·뉴저지항만공사, 자매항 결연 요청
부산항, 해상 물류 혼란 해결사 역할 기대
이 모든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사이에 정보 교환이 원활해야 하며 최대한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유수의 항만은 항만 커뮤니티 시스템(PCS), 즉 항만 디지털 협업 플랫폼 구축에 노력했지만 성공적이지 않다. 이유는 당사자들이 정보 제공에 협조적이지 않고, 국가나 항만 당국이 강제할 수 없어서다. 글로벌 선사는 경쟁사에 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해 제공을 꺼리기도 하고, 전 세계에 컨테이너 부두를 운영하는 글로벌 부두 운영사는 해외 본사의 규정으로 인해 정보 제공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 세계 모든 항만이 PCS 구축에 있어 수년 전까지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부산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산항만공사의 끈질긴 설득에 글로벌 기업들과 몇몇 우리 기업들이 협조를 했고, 100%는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실시간 혹은 과거 데이터를 제공받아 ‘체인포털(Chain Portal)’이라는 PCS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해관계자 설득의 키워드는 ‘윈윈’이었다. 정보를 제공하면 통합 플랫폼을 통해 취합된, 고도화된 정보를 다시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정보 제공 기업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부산항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던 것이 돌파구였다.
지난해 11월 세계은행이 전 세계 PCS 우수 사례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중소 항만 PCS를 제외하고 글로벌 주요 항만 중에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싱가포르항, 그리고 부산항이 뽑혔다. 부산항 PCS의 특징은 컨테이너 트럭의 정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선사, 부두 운영사, 트럭 운송사 정보 연계가 시작점인 것과 보안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부산항의 PCS 수준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저지에서 개최된 한미물류공급망 콘퍼런스에서 뉴욕·뉴저지항만공사 항만 부문 대표가 “부산항과 자매항 체결을 제안한다”고 깜짝 요청했다.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자매 결연 협의가 진행됐고 뉴욕·뉴저지항만공사 본사에서 부산항만공사와의 자매항 체결식이 이뤄졌다.
글로벌 물류 대란을 경험하면서 전 세계 항만들은 그 어느 때보다 PCS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PCS는 기본적으로 ‘항만 내’에서 발생하는 정보 및 데이터 플랫폼이다. PCS 자체도 항만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상 공급망 원활화에 기여하지만, PCS끼리 연결된다면 글로벌 공급망 혼란 완화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산항에 입항 예정인 A선박이 앞선 항만에서 출항을 못하게 됐다면, A선박 입항에 맞춰 미리 장치장을 배치해 둔 부두 운영사는 난처하게 된다. 상호 연결된 PCS가 있다면, 대기 중인 B선박을 우선 접안시킨 후 장치장 배열을 변경할 수 있다. 부두 운영사는 선석을 놀리지 않아 매출이 늘고, B선박 대기 시간은 줄고, 화주는 B선박의 화물을 빨리 받게 되고, 부산항 시설 활용률이 높아지는 연쇄 효과를 얻는다. 그야말로 ‘윈윈윈윈’인 셈이다.
‘항만 내’ PCS 구축도 더딘 상황에서 PCS끼리의 연결은 먼 미래의 일일 수 있지만 글로벌 해상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PCS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모든 항만 당국이 인지하고 있기에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부산항이 앞으로 해상 공급망 혼란의 해결사 역할에 앞장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4-03-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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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특성화 교육을 지켜내자
해양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해양에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상선의 운항 그리고 바다 밑의 어족 자원과 관련된 수산,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 수출입 상품과 바다를 이어주는 항만과 물류, 해양과학과 해양문화도 포섭된다. 한국해양대학은 초기엔 상선의 운항에 필요한 항해사와 기관사만을 양성했기 때문에 해양의 의미는 상선 운항에 국한됐다. 1980년대 이후 학교 규모가 커지면서 해양은 넓은 의미가 됐다.
해양산업은 바다를 활용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바다는 육지와는 다른 환경이라서 위험하지만, 꼭 필요하고 잘 활용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도 특별해야 한다. 바다와 연관된 산업에 진출할 대학생을 특별히 교육하는 것이 대학에서의 해양특성화 교육이다. 해운산업 분야는 한국해양대, 수산 분야는 부경대, 조선 분야는 조선공학과를 중심으로 인력이 양성돼 왔다. 이들 학교와 학과는 훌륭한 인력을 배출해 해양산업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대학 진학생 수가 갈수록 감소하는 가운데 최근 신생아 수도 25만 명 아래로 줄어들면서 해양 분야 인력의 배출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그중에서도 수출입 상품을 실어 나르는 해운 분야의 인력 양성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
인구 절벽 시대 배 탈 젊은이 줄어
졸업한 이도 대학에 편입하게 해야
부산의 경쟁력은 해양산업서 나와
관련 대학의 기능·규모 더 확대를
해양산업 중 해운산업은 전통 있는 산업이다. 우리나라의 해운업 매출은 40조 원 정도인데, 이는 전체 수출의 5%에 해당하는 수치다. 우리나라 수출액이 800조 원이라고 할 때 99%는 해운을 통해 운송된다. 이는 해운이 수출을 달성하는 데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다. 그래서 국가 경제에서 해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가 아니라 절반 이상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수출품은 우리 선박에 실려서 나간다. 험한 바다를 헤치고 누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를 배달해 주어야 한다. 선원이 바로 그들이다.
해운 부분에서 선박을 운항하는 고급 선원을 해기사라 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을 해기 교육이라 한다. 우리나라 원양 상선은 1500척 정도이다. 이 선박에 승선하는 사관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으로는 한국해양대학, 목포해양대학, 부산·인천해사고 그리고 해양수산연수원이 있다. 1년에 약 1500명이 배출된다. 인구 절벽 시대에 배를 탈 젊은이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장차 지원 학생 수가 너무 줄어서 존폐 위기에 이르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면 수출 일꾼인 해양 인력의 배출과 교육기관들이 존속할 묘책은 무엇인가? 우선 선원이 될 학생들이 찾아와야 한다. 바다를 동경하고 기꺼이 선원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한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만큼 육지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다에 있어도 육지와 같은 생활환경을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최근 스타링크와 같은 인공위성 통신망을 활용해 상시 육지와 연결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진전이다. 이를 더 확산시키기 위해 부산시와 선주단체인 해운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해양특성화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교육기관이 존속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교육과 연구 기능이 축적·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대학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줄어드는 학생 수를 최대한 보강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법학이나 경영학 등 학부를 졸업한 30, 40대를 주 대상으로 하는 오션폴리텍 등 단기 과정에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이를 감안하면 대학을 이미 졸업한 사람들도 해양대학에 편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줄어드는 우리 선원들은 외국인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고 현재 상당수 진행 중이다. 외국인 선원들은 교육 수요가 있으므로 국내 대학의 장래 교육 자원으로 포섭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재교육 기능을 대학이 담당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미국에서 이런 사례를 볼 수 있다.
대학은 산업계가 요구하는 사람을 배출해야 한다. 1인 1기가 아니라 이젠 1인 2기를 목표로 교육해야 한다. 선박의 운항은 항해와 기관으로 나누어서 교육한다. 그러나 원격 조종이 되는 자율운항선박 시대에는 항해와 기관은 통합되기 때문에 둘을 모두 교육해야 한다. 흩어져 있는 해기교육기관은 효율화를 위해 통합 관리해야 한다.
대학은 위치한 도시와 운명공동체일 정도로 지역 경제에 중요하다. 대학이 존재함으로써 학생 수만큼 상주인구가 늘어난다. 해운, 수산, 조선업은 부산시 고용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의 핵심산업이다. 부산의 지역 경쟁력은 해양산업에서 나오므로 해양특성화 대학이 꼭 필요하다. 이는 세계를 목표로 더 특화하고 부산 고유의 것으로 키워나가야 할 대상이지 일반대학교와 통합의 대상은 아니어야 한다. 오히려 부산시는 해양수산부와 함께 해양 관련 교육과 연구 기능을 해양특성화 대학과 공동 관리해 대학의 기능과 규모를 확대해 주어야 한다.
2024-02-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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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지속 가능한 해양문화 교육
새해 들어 바다와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안이 시행되고, 또 한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새해부터 시행된 법안은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해양교육문화법)’이고, 이달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해양관광의 체계적인 개발과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해양레저관광 진흥법’이다. 모두 ‘바다의 도시’ 부산에 힘을 주는 법안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관광시장에서 해양관광의 비중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22년 기준 전국 여행자의 71%가 연안 지역을 방문했는데,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해양교육 활성화 법안 새해 시행
미래 세대 위한 정책 마련 시급한 때
‘부산 바다 알기’ 부산의 미래 원동력
과거 바다는 농어민들의 생계유지와 각종 물자 수송 등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우리의 삶과 늘 공존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더 폭넓게 재인식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인 자크 아탈리는 “미래에도 초강대국은 바다를 통해서, 바다 덕분에 솟아오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미래의 초강대국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도 소중한 바다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체계적인 교육 과정과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바다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바다의 도시인 부산은 단순히 구호적이고 선언적인 바다 교육이 아니라 ‘부산 바다’를 제대로 알고 배우며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일본에서는 바다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해양정책본부와 국토교통성, 국제교류기금재단이 주축이 돼 바다 오염을 막고 인간과 공유하는 바다를 만들기 위한 ‘바다와 일본’이라는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 330만여 명이 참가하고 있으며 1만 2000여 개의 단체와 기업이 파트너사로 활동 중이다.
그 첫 과제가 바로 ‘바다에 대해서 배우자’이다. 바다의 변화와 문화, 생물 등 10개의 행동 목표가 있는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바다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각 지역의 민관학이 공동 진행한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는 곳과 가까운 바다에서 잡히는 각종 어패류를 확인하고, 이 어패류가 유통 과정을 거쳐 음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또 바닷가를 걸으며 해양 쓰레기에 대한 인식 개선에서 나아가 해안가 쓰레기를 줍는 팀 대회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2년에 한 번 ‘바다와 일본인에 관한 의식 조사’를 실시해 향후 정책과 입법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도 구축 중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아동기의 바다 체험이 바다에 대한 의식 변화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한 항목이다. 이에 따르면 어린 시절 바다를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바다에 대한 애착과 관심도가 높다고 한다. 이처럼 아동기에 바다를 접하고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바다의 다양한 문화와 현상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도 지자체 차원에서 더 구체화한 해양문화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바로 인간과 바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바다에 대한 애착을 생기게 하는 지속 가능한 ‘바다 배우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옛말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표현이 있다. 배워야 알게 되고 알아야 무엇이 문제인지 찾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바다나 해양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제도가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앞서 언급한 해양교육문화법이 올해부터 시행되면서 해양교육을 위한 기반은 마련됐다.
특히 우리 부산의 미래 먹거리는 누가 뭐래도 바다이고 그 속에서 많은 과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왕 정부에서 관련 법률까지 제정한 만큼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부산만의 시행 계획을 민관학이 서로 힘을 합쳐 수립해야 한다. 다른 지자체보다 먼저 자라나는 아이들이 바다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어린 시절 바다를 알고 체험하는 것은 긍정적인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부산의 아이들이 부산 바다에 관심을 두고 바다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살고 싶은 도시’로 부산에 대한 인식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을 두고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표현이 통용된 지 오래다. 청년층의 순유출이 많은 사실이 이런 자학적인 표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부산(釜山)스럽고 소중한 자산인 부산 바다를 알기 위한 지속 가능한 교육은 청년층의 부산 순유출을 막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부산의 미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2024-01-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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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포털, 언론과 상생 마인드 가져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뉴스 이용자의 절대다수는 포털을 통해서 뉴스를 소비한다. 뉴스 이용자들이 개별 언론사의 홈페이지나 앱을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다. 언론으로부터 뉴스를 납품받는 포털이 엄밀한 의미에서 단순 유통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이용자들은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하고 있다. 포털의 무료 뉴스에 익숙해진 뉴스 소비자들은 온라인 뉴스를 당연히 무료 상품으로 인식한다. 이렇듯 언론 생태계를 장악한 포털이 저널리즘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한둘이 아니다.
다음카카오가 지난해 11월 포털의 뉴스 검색 대상 언론을 이른바 콘텐츠 제휴 언론사(CP)로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한 것과 관련하여 언론사들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포털 다음의 이번 정책 변경으로 CP가 아닌 1000여 곳의 일반 검색 제휴 매체의 기사가 이용자들에게 노출되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다음, 콘텐츠 제휴사만 검색 노출
일반 검색 제휴 언론사 원천 배제
대다수 지역 언론 목소리도 빠져
여론 다양성 제약 민주주의 위기
검색 결과 기본값을 일부 언론으로만 제한하는 다음의 결정은 이용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이나 소규모의 전문 매체를 여론의 공론장에서 배제함으로써 여론의 다양성을 제약하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다수 지역 언론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치 담론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공론장을 위축시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음 측은 이번 정책 변경의 사유를 이용자 선호도를 고려하고, 양질의 뉴스 소비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사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들은 지난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뉴스 검색 서비스 차별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또 지난 4일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카카오의 일방적 뉴스 검색 정책 변경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행위일 뿐만 아니라 중소 언론의 정상적 언론 활동을 방해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 언론 단체와 언론사들은 이전 방식으로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포털을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은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해당 상품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현상인 ‘네트워크 외부성’을 특성으로 가진다. 뉴스 유통을 포함한 디지털 시대의 제품과 서비스 유통은 이 같은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근간으로 작동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계정 등록자와 이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그 플랫폼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플랫폼 사업자인 포털에 뉴스라는 아이템은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여 플랫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방문자를 최대한으로 유인하고, 그들의 체류 시간을 늘려 여타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와 구매를 유인하는 수단으로서 뉴스는 최적의 미끼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포털은 뉴스 서비스 정책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신과 언론 매체와의 상호 협력과 상생의 마인드를 견지하여야 한다. 뉴스 서비스 정책 수정에 있어서도 제휴사들과 사전 협의를 거치는 자세가 요구된다. 뉴스를 단순히 포털에 입점한 신발, 의류, 액세서리와 같은 일반 소비재처럼 취급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널리즘의 산물인 뉴스는 사회적 공기로서 공공재이다.
포털에 어떤 언론 매체의 어떤 뉴스가, 어떻게 배열되어, 어떤 검색 패턴과 알고리즘으로 제공되는가 하는 문제는 대중의 어젠다 및 여론 형성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처럼 포털은 우리 사회의 공론장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포털이 신중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뉴스 공급 정책을 펼쳐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언론과 저널리즘이라는 사회 체계가 생산하는 뉴스가 공공재인 만큼 뉴스 유통의 핵심 플랫폼인 포털 역시 뉴스 공급의 기본 원칙으로 보편적 서비스를 지향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마땅하다. 여기에는 포털이 뉴스 생산자인 제휴 언론사들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대하는 상생의 마인드도 포함된다. 한편, 언론사들은 포털 상에서 지나친 트래픽 경쟁을 염두에 둔 선정적 보도, 베껴쓰기, 어뷰징 등의 관행을 당장 버려야 한다.
이번 포털 다음과 언론사 사이의 갈등이 포털 중심의 언론 생태계를 재구조화하는 출발점이자, 언론이 자생적으로 독립하는 길을 모색하는 숙고의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2024-01-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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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수산부 장관'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교체됐다. 새 장관은 최근까지 부산 영도에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이끌던 강도형 원장이다. 그는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되는 2일 취임식을 예정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없을 것 같다. 멋진 출발을 기대한다.
그러나 취임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폭력, 논문 표절, 배우자 위장 전입 등 최소 4가지 이상에 대해 해명하는 곤욕을 치렀다. 여소야대의 국회는 자질과 능력 부족을 탓하며 청문보고서를 아예 채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임명 강행’이 없었다면 그는 그대로 낙마의 불명예를 안았을 것이다.
해수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사태에 대한 대응 방법을 두고 최근 격론을 겪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야 충돌이 잦은 부처가 아니다. 예산 규모부터 전체 19개 부처 중 14번째로 약골 중 약골로 분류된다. 청문 과정에서도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해수부 장관에 대한 청문보고서는 대부분 채택됐다.
역대 해수부 장관 중에서 이번처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경우는 윤진숙 전 장관이 유일했다. 문성혁 전 장관도 부적격 의견이 나왔지만 적격 의견을 병기하는 해법으로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강도형 장관은 청문 과정에서 “장관 후보 지명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다른 장관 후보자들이 받지 않은 질문이었다. 의원들이 정말 궁금했다기보다 ‘이력’만으론 자질과 능력이 의심된다는 불신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야당 의원들은 ‘불가사의’ ‘신의 손’ ‘보이지 않는 손’ ‘벼락출세’라면서 조롱했다.
강 장관은 이력이 화려하지 않다. 정치인도, 고위공직자도, 석학급 교수 출신도 아니다. 진즉부터 예고된 장관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1년 남짓의 해양과기원장이란 직책이 없었다면 정말 내세울 이력이 없을 뻔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과거 이력이 아닐 테다. 앞으로 국회보다 더 ‘엄정한’ 국민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해양 산업의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고 바다와 수산물 안전에 대한 국민 눈높이도 달라졌다. 해양 바이오는 ‘전문가’ 강 장관이 진단했듯이 겨우 ‘태동 단계’다. 장관이 된다면 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해양 바이오 예산을 확대하겠다고 말했지만, 6조 원대의 해수부 총예산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 해양 과학이 해수부 핵심 업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예산까지 언급한 것은 성급한 욕심이 아닐까.
‘부실’ 우려를 낳고 있는 HMM 매각 작업은 그의 역량을 검증하는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해운과 금융, 어느 쪽도 ‘전문적’이지 않은 데다 해수부가 단독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해수부는 예산에 비해 현안이 많은 부처다. 해양의 특성상 전체 부처 중에서 관할 권역이 가장 넓다. 1차 산업에서 4차 산업까지 모든 산업 영역을 담당하는 부처이기도 하다. 그는 현안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 “공부하겠다”고 답했지만 의원들 지적처럼 해양수산부 장관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리는 아닐 테다. 정확히 보고받고, 세밀하게 검토해서,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해양 관련 정보를 가장 체계적으로 보고받겠지만, 오히려 그 속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장관이 있다는 점에서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 좋겠다.
그를 믿는다. 그의 자질과 능력보다 그가 부산에서 보여준 열의와 패기, 직접 발로 뛰며 현안을 해결하려던 실천력을 신뢰하고 싶다. 그는 ‘동료’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해수부 공무원들을 동료라고 지칭하며 함께하겠다고 답했다. 해양과기원 원장이 된 뒤 경쟁에서 낙오한 선배 연구자를 보직자로 옆에 두며 함께하는 ‘동료관’을 떠올리게 했다. 독단을 경계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장관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무회의에서 해수부 위상을 끌어올리고, 해수부를 넘어서 다른 부처의 협력을 끌어내는 역량도 기대하고 싶다. 다행히 대통령이 12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칸막이를 과감하게 허물고 과제 중심으로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억세게 관운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에서 부산으로, 다시 세종으로 권력 핵심이 되는데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바다 빛깔 ‘청룡’의 새해에 ‘국회 불신’을 ‘국민 신뢰’로 화답하고, 해양 강국 대한민국 기틀을 다진 ‘성공한 장관’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당부한다.
2023-12-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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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119 대 29'… 그래도 담대한 도전을
‘119 대 29’는 부산 시민에게 오랫동안 뼈아픈 스코어로 각인될 것이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는 결국 유치되지 못했다. 그것도 너무 큰 격차로 종결됐고, 이로 인한 시민 상실감은 크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오는 2025년이면 세 번째 월드엑스포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본 내 여론이 좋지 않다. 오사카엑스포 개최를 겨우 2년 앞둔 시점인데, 지난달 초 실시된 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8.6%가 2025오사카엑스포에 대해 “불요(不要)”라고 답했다. ‘불요’란 ‘불필요하다’, 즉 ‘개최하지 말자’는 의미다. 심지어 엑스포 유치 도시인 오사카를 기반한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 지지층 65%는 엑스포 개최를 노골적으로 반대했고, 시민 9만 명의 ‘반대’ 서명 명부가 오사카 당국에 제출되기도 했다.
최근 오사카엑스포 반대 여론 높아
일본, 철회 않는 건 ‘유발 효과’ 때문
부산엑스포 유치 성적 실망스럽지만
과정만큼은 진심… “다시 시작하자”
가장 큰 반대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자재비와 노무비가 당초보다 거의 배나 올라 국민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본 지인들을 만나면 결이 조금 다른 얘기를 종종 듣는다. 월드엑스포를 두 차례나 개최한 일본은 2025년 오사카엑스포에서 세계 최고 지도국 지위를 선양하고 싶은데, 딱히 ‘꺼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 특유의 자괴감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최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세계를 향한 예지력도 내세울 게 없다는 걱정과 불만이 엑스포 개최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제 와서 오사카엑스포를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공익재단법인 2025일본국제박람회협회는 자국의 국가전략 ‘소사이어티 5.0’ 실현을 목표로 일본을 세계에 다시 알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기대하는 오사카엑스포 유료 입장객도 아이치엑스포보다 무려 1000만 명 더 많다. 투입 비용이 적지 않지만, 유발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긍정적’ 신호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릿쇼대학 오오이 교수는 오사카엑스포의 투입 대비 생산 효과가 1.3배라고 주장했다.
부산이 유치하려 한 ‘등록엑스포’를 일본은 이미 1970년 오사카, 2005년 아이치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오는 2025년 다시 오사카에서 개최한다. 대전과 여수에서 ‘인정엑스포’만 치른 대한민국과는 엑스포에 한해서는 격(格)이 다르다.
부산엑스포 유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30’ 대신 ‘2035’ ‘2040’으로 숫자만 달라졌다.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은 ‘도전’이고 ‘성취’다.
부산은 엑스포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각료, 부산시장, 기업인, 시민단체까지 오랜만에 똘똘 뭉쳐서 응원했다. 성공의 쾌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샘솟은 ‘도전 아드레날린’은 적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허망하게 졌고 아쉬움과 허탈감이 컸지만, 대통령과 부산시장이 공동 목표를 향해서 그렇게 고군분투한 모습을 최근 수십 년간 본 적이 없다. ‘119 대 29’라는 숫자에서, 허탈감이 컸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그 낯설고 뜨거운 장면들은 우리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누구보다 국제 뉴스에 민감해서 일찍부터 엑스포 유치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엑스포 유치 사절단이 외국을 순방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를 만나 환담을 나누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때때로 빙의의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발로 뛰고 머리를 맞대면서 빚어낸 서사다. 설령 기대와 실망감이 교차한 서사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작가 김주영의 단편소설 중 〈머저리에게 축배를〉이란 묘한 제목의 작품이 있다. 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드디어 그 목표가 달성된 날, 자신을 위해 준비된 술판을 갑자기 뒤집자 순간 동료들이 중의적으로 내뱉은 건배사가 바로 ‘머저리에게 축배를’이었다.
어쩌면 우리보다 일찍 유치전을 시작한 사우디를 상대로 한 우리의 엑스포 도전이 다소 무모하고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가 그랬다.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란 장미꽃을 피워냈다. 대한민국은 이제 끝났다고 했던 외환위기 속에서도 ‘금 모으기’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오 대 영(5 대 0)’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거스 히딩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119 대 29’는 머저리 같은 성적이 맞다. 그러나 그 머저리들을 위해 축배를 들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외치고 싶다.
2023-12-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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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니어쇼어링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까?
10여 년 전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듯하다. 니어쇼어링이란 생산 기지를 소비지 근거리 또는 소비지 인접국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즉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을 먼 중국이 아닌 멕시코와 같은 인근 국가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많은 공산품이 부산항을 거쳐 북미, 유럽 등으로 환적되는데 만약 니어쇼어링이 심화되어 탈중국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는 부산항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수년 전부터 니어쇼어링의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뒤져봤으나 마땅히 니어쇼어링 현상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에 더해 글로벌 물류 대란까지 겪자 니어쇼어링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아졌다. 부산항 환적 수요가 실제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 또 한 번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니어쇼어링을 보여 주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었다.
미국 등 소비국 주변에 생산 기지 이전
중국 수출품 부산항 환적 감소 우려돼
낮은 운임에 운송 거리는 예상 밖 증가
공장 이전,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 가능
그러던 중에 약 2주 전 부산항만공사가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한 연사가 이례적 주장을 했다. 니어쇼어링 현상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컨테이너로 수출입되는 화물의 가격에 비해 현재의 컨테이너 해상 운송 비용은 미미한 수준이다. 글로벌 제조 기업들은 여전히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등 기존의 생산 기지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주 극히 일부의 니어쇼어링 사례를 일반화해서는 안되며, 나아가 니어쇼어링 발생 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특정 국가들의 정치적인 희망 사항이 마치 사실인 양 호도되고 있다고도 했다.
조금 놀라운 주장이기도 했지만 내심 반갑기도 했다. 니어쇼어링 현상은 장거리 해상 운송 수요 감소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생산 기지가 집적된 중국의 생산 물량 감소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부산항으로서는 중국발 환적 물량이 감소할 수 있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 주장을 180도 뒤엎는 주장이기에 대단히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 연사의 솔직함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은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박하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가 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사는 논리정연하고 자신감 있게 본인의 의견을 개진했다.
상기 주장의 강력한 근거는 최근 덴마크 해운조사분석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북미 지역 수입 컨테이너 화물 1TEU당 평균 해상 운송 거리는 약 1만 2000㎞로 지난 5년 간 계속 증가했다. 반면 전체 북미 수입 컨테이너 물량 중에서 북미 역내 항로 운송 물량 비중은 5년 연속 감소했다. 즉 니어쇼어링 현상으로 중국에서 생산되어 북미로 수입되던 화물이 인접 국가인 멕시코 생산으로 전환됐다면 장거리 해상 운송 거리는 줄어들고 근거리 역내 운송 비중은 늘어났겠지만 반대의 데이터가 나온 것이다.
데이터를 보면서 필자는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지위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유지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세청 자료를 역산해서 보면 부산항을 통해 연간 수출입되는 컨테이너 화물 1TEU 속 평균 화물 가격은 대략 6000만 원이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 화물을 태평양을 건너 북미까지 보내는 해상 운임은 최근 시세로 150만~200만 원 정도다. 즉 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이 태평양을 건너는 비용은 컨테이너 속 화물 가격의 평균 약 2%에 불과하다.
최신 유행하는 나이키 운동화로 컨테이너를 가득 채운다면 그 가격이 소매가 기준 최대 5억 원에 달하고 이 경우에는 해상 운임이 컨테이너 속 화물 가격의 0.3%도 차지하지 않는다. 기계 설비는 10억~20억 원을 호가하니 화물 가격이 고가라면 해상 운임은 비용 측면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일반 제조업에 있어서 생산 기지로서의 최우선 고려 대상은 저렴한 노동력과 해당 지역의 제조 생태계 조성 여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이 부분에서 중국을 대체할 만한 나라는 많지 않다. 미중 갈등이 변수가 될 수 있겠으나, 현재 미국의 입장을 보더라도 최첨단 장비가 아닌 일반 제조업의 중국 생산에 대해서는 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1956년 4월 컨테이너로 최초 운송을 시도했던 미국의 말콤 맥린이 컨테이너 시범 운송 후 기존 대비 운송 및 하역 비용이 97% 감소했다고 했다. 글로벌 아웃소싱 생산을 가능하게 해 준 건 바로 컨테이너로 인해 해상 운송비가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저렴함 때문에 니어쇼어링은 아주 제한적이거나 혹은 훨씬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2023-12-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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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선원 해외 취업 60주년' 지금부터 준비를
1960년대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30% 내외로 대학생 수는 10만 명 정도였고, 대졸 취업률은 50%가량 됐다. 이는 해양 관련 대학도 비슷한데 1962년과 1963년 한국해양대 졸업생 취업률은 50%였다. 그러나 이 두 해를 제외하면 상황은 좋지 않다. 앞서 2년을 제외하곤 1955년부터 1964년까지 한국해양대 취업률은 대략 5%에 지나지 않았다. 취업하지 못한 항해과 졸업생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거나, 기관과 졸업생은 목욕탕 등에서 일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항해과 졸업생을 ‘지게꾼’, 기관과 졸업생을 ‘보일러쟁이’라는 자조적인 말로 부르기도 했다. 1965년 6월엔 선장 39명, 기관장 20명 등 갑종 해기사 144명이 실업 상태였다. 당시 해양 분야 고등교육기관의 경우 수업료는 면제됐고 제복비, 기숙사비 등은 국비로 지원되고 있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양성한 고급 해기 인력인 해양 분야 대졸자들이 실업 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적 재원을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964년부터 우리나라 선원 외국 나가
국내 해사 산업 고도화·선진화에 기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1세대 선원
자료 수집·정리해 기념관 건립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반전도 있었다. 협성해운(설립자 고 왕상은)이 홍콩의 풍성선무(豊誠船務)에 한국 선원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게 1964년이었다. 협성해운은 해외 선주사에 우리나라 선원을 처음으로 공급하는 만큼 대한해기원협회(현 한국해기사협회)에 가장 우수한 해기사를 선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협회는 당시 한국해양대 교수로 있던 김기현을 선장으로 초빙해 1항해사와 기사, 기관장 등을 선임토록 하고, 2, 3항해사·기사는 시험을 쳐 선발했다. 이렇게 모인 김 선장과 이상래 기관장 등 28명의 선원이 1964년 2월 10일, 2700톤급 룽화(Loong Wha)호에 승선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선원의 해외 취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최초의 일이다.
김기현 선장이 교수직을 버리고 해외 취업선 선장으로 이직하게 된 데는 높은 급여 때문이었다. 당시 국적선 선장 월급은 1만 9000원 정도였지만, 룽화호 선장 월급은 7만 원 정도로 3.5배가량 많았다. 한국 선원의 저렴한 인건비와 근면·성실함을 확인한 일본과 미국의 대형 선사들이 잇달아 한국 선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선원의 해외 취업에 앞서 간호 인력과 광부들의 독일 취업이 먼저 이루어졌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만 8000여 명의 광부와 간호 인력이 파독 근로자란 이름으로 파견됐다. 파독 근로자들은 14년간 총 1억 15만 달러의 외화를 국내로 송금했다. 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기려 파독근로자기념관(서울), 파독전시관(남해), 파독광부기념관(태백) 등이 마련됐다. 1965년 10월 6일, 국내 잉여 인력을 해외에 진출시킴으로써 실업자 감소, 인구 증가 억제, 외화 획득, 교역 증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세계 속에 한국을 심자’는 기치를 내걸고 해외개발공사가 설립되었다. 선원 해외 송출 업무는 1966년부터 한국선원해외진출진흥회가 도맡아 하다 해외개발공사 설립 뒤인 1966년 12월 15일에는 공사로 업무가 이양되었다. 해외개발공사는 이후 한국해외개발공사를 거쳐 1991년 현재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 취업 선원들은 1965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82억 6178만 1343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지금도 해외 선주의 선박에 승선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해외 취업 선원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제조업의 평균이익률을 10%로 가정할 경우 820억 달러 상당의 수출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해외 취업 선원들은 또한 해외 선주의 다양한 최신 선박에 승선해 선박 운항 기술을 습득해 왔을 뿐만 아니라, 국적선사들이 초기 자본을 확보하고,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을 통해 국적 선대를 확충할 수 있는 인적 자본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선원선박관리업, 선박대리점업, 선용품공급업, 선박수리업과 조선업 등 해사 산업의 고도화와 선진화에도 기여했다. 미국의 대형 선사 라스코와 MOC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까지 국내 조선소에서 34척의 선박을 새로 만들고 90척의 선박을 수리했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 해사 산업은 해운 세계 6~7위, 조선 1~2위, 항만 7위 등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제 2024년 2월이면 우리나라 선원이 해외 취업에 나선 지 60주년이 된다. 사람에게도 60주년은 환갑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해로 여겨지고 있다. 1세대 해외 취업 선원들이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해외 취업 선원들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 해외 취업 60주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마도로스기념관을 건립했으면 한다. 이것이 그들이 우리나라 해사 산업과 국민 경제에 기여한 바를 기리고 기억하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2023-12-03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