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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수도권에 보내는 전기요금청구서
서울·인천·경기가 넘쳐나는 쓰레기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도권 3개 시·도가 함께 이용하는 인천의 수도권매립지가 용량 포화로 내년 사용이 종료돼 서둘러 대체 매립지를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취, 분진 등 환경 문제와 극심한 주민 반발을 초래할 게 뻔한 쓰레기 매립지를 떠안겠다는 지자체가 한 곳도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하루 3200t이다. 마포, 강남, 양천, 노원 등 4곳의 쓰레기소각장에서 이중 2200t을 처리하고, 나머지 쓰레기 1000t은 인천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 파묻고 있다. 서울시는 매립지를 조성할 땅이 없다며 이번에도 인천시가 ‘총대’를 메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인천시민들은 쓰레기는 발생지 처리가 원칙인데, 왜 서울 쓰레기를 우리가 떠안아야 하느냐며 폭발 직전이다. 고통과 피해를 묵묵히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매립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폐쇄해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 반입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태세다.
경기도는 경기도대로 이러다 대체 매립지 부담을 떠안는 것 아니냐며 안절부절이다. 3개 시도가 이대로 대체 매립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수도권의 쓰레기 대란은 물론, 지자체 간 첨예한 갈등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김포를 서울에 편입시켜 서울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김포매립장에서 처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나마 생활 쓰레기는 수도권 지차제들이 자체 해결하고 있지만, 전체 쓰레기의 90%에 달하는 사업장 쓰레기는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져 처리된다. 지방 곳곳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권발 쓰레기산’이 생겨나고, 소각장에서는 1년 내내 매캐한 유독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재산 가치를 떨어뜨리고,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혐오기피 시설을 우리 지역에 두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한편으로는 나의 손해에는 극도로 예민하면서도, 남의 고통에는 한없이 둔감한 수도권 주민들의 이중성이 새삼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 주민들이 소비하는 막대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지역민들은 위험천만한 원전을 머리에 이고 산다.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지역 곳곳에 고압 송전탑이 세워지고, 주민들은 전자파 피해에 대한 불안감과 지가 하락 등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각종 질환과 건강 이상에 시달려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전력자립도는 고작 8.6% 남짓이다. 수도권은 철저하게 지방에 전력을 의존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원전에서 막대한 열에너지를 방출하고 남은 방사능 덩어리인 사용후핵연료(핵폐기물)로 이미 꽉 찼다. 하지만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짓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수도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원전에서 만드는 전력은 수도권에서 쓸 테니, 원전 쓰레기 처리 문제는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면 왜 한강변에 지어 전력을 자체 생산하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비싼 땅값과 국가안보 위해, 국민 정서와 배치된다는 둥 각종 억지 논리를 갖다 붙인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토록 견고해보이던 수도권식 논리에도 균열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4일 시행에 들어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다. 그간 전력 소비지인 수도권과 전력 생산지인 지방이 똑같은 전기요금을 부과 받아왔다. 환경오염 등 각종 부담에 시달리며 전력을 생산하는 지방이 정작 사용량은 서울보다 훨씬 적다. 정의에도 상식에도 맞지 않다는 지역의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부산·경북·전남 등 원전밀집지역의 전기요금이 서울 등 수도권보다 싸진다. 지역별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이 다르게 매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적용 단계에 이르면 왜 필수 공공재인 전력요금에 차등을 두느냐는 수도권 주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예상되는 만큼,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이 치밀한 논리로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수도권은 그간 지방 주민들의 희생 위에서 우아하고 쾌적한 삶을 구가해왔다. 위험의 외주화, 혐오의 지방화가 수도권 일극체제를 지탱해온 대한민국의 성공 공식이었다. 지방 주민들은 마치 대학에 보낸 오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군살이 박히도록 미싱을 돌리던 1960~70년대의 여공처럼 묵묵히 희생을 감수해왔다. 그 오빠가 집안은 일으켜 세웠지만, 여동생의 노고는 나몰라라 하며, 아직도 당연한 듯 뒷바라지를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합당한 대가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박태우 사회부 차장 wideneye@busan.com
2024-06-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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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참전 용사 희생과 헌신 잊지 말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노래 ‘전우야 잘 자라’)
이 노래를 모르는 50대 이상 남성은 없을 것이다. 기자도 초등학교 시절 뜻을 잘 모르면서 등하굣길에서 친구들과 이 노래를 함께 부르곤 했다.
‘전우야 잘 자라’는 1950년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현인이 노래했다. 정식 군가는 아니었지만, 군에서 널리 불린 대표적인 진중 가요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맘때면 어릴 적 단체 관람했던 반공 영화 속 노래들이 떠오른다. 6·25의 노래, 비목, 굳세어라 금순아, 가거라 삼팔선아, 님계신 전선 등 ….
‘전우야 잘 자라’는 전쟁으로 숨진 전우들을 떠올리는, 슬픈 노래다. 하지만 행진곡풍으로 박진감 있다. 또 비장한 가사와 애조띤 곡조가 가슴을 찌른다. 그때 상황을 헤아릴 순 없지만 왠지 노래를 부르면 코끝이 찡해진다.
호국보훈의 달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영예와 자긍심 고취, 국가보훈 대상자를 예우하는 각종 행사와 사업이 추진된다.
올해 호국보훈의 달 주제는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실천하는 보훈’으로, 부산 지역 곳곳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주에는 6·25전쟁과 관련 6·25참전유공자회 수영구지회의 6·25전쟁 영상물 전시와 부산 기장군의 ‘올해 기장군 호국보훈 감사제’가 열렸다. 부산지방보훈청의 ‘부산! 걸어서 보훈 스탬프 챌린지’, 월드엔젤피스예술단의 ‘대한민국’ 호국콘서트, 육군 53사단의 보훈단체 회원 초청 행사, 한국자유총연명 부산시지부의 유엔군 추모제 등도 열렸다.
이들 행사에 맞춰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부산지부 회원들도 분주하다. 이들은 한 달 내내 군, 기관, 단체가 개최하는 각종 보은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6·25참전유공자회 부산지부에는 16개 지회가 있는데, 회원 평균 나이는 93세다. 2000명 등록 회원 전원이 90세가 넘었다. 온갖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이들에게 6월은 아마도 ‘잔인한 달’ 일 수도 있다.
100세 가까운 이분들에게 갑작스러운 전우의 전화는 반가움과 긴장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다른 전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일 수도 있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의 운명 소식은 ‘다음은 내 차례다 싶어 슬픔과 공포가 밀려든다’고 한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지도 안 가지도 못하고, 울지도 안 울지도 못한다고 한다.
현재 이들 어르신의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6월만 오면 오라가라 정신이 없다. 정작 형편이 안 돼 실버타운이나 양로원을 갈 수 없어 집안에 박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이제는 잘 듣지도 못하고 말할 힘조차 없다’고 푸념한다. 수십 년 한결같이 정부를 향해 처우 개선을 외쳤지만 돌아온 건 늘 똑같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메아리뿐이라도 한다.
이분들의 연령을 고려하면 10년 뒤 대부분이 아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짧게 남은 역사적 시간 속에서 여러 의문과 질문들이 떠오른다. 아직도 전쟁의 참사에서 얻는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분들에게 수십 년째 ‘사회적 외면’이라는 2차 가해를 가해도 되는 걸까. 6월만 되면 겉치레로 이분들을 찾아가고 행사장에 오가라고 해도 되는 걸까.
기존의 국가유공자 등 예우법에서 더 나아가 진작 참전용사를 기리는 특별법을 만들어서 이들을 도와야 하지는 않을까. 6·25전쟁이 끝나고 70년이 넘었는데도 이 같은 법률 하나 만들지 못한 조국, 대한민국은 이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할까. 이미 돌아가선 분들의 명예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기리지 않는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희생에 걸맞은 최고의 예우와 존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조국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애국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첫 번째 룰조차 지켜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10년 남짓. 온갖 특별법과 거부권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정치권과 정부에게 묻고 싶다. 6·25전쟁 등 참전 용사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만들 의향은 없냐고. 우리 조국을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목숨을 내건 사람을 예우하고 돌봐줄 수는 없냐고. 정쟁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 달라고. 제발 부탁한다.
2024-06-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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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원영적으로 생각해 본 ‘노인과 바다’
컵에 물이 반이 있다. 이를 보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한다. 부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할 것이다. 최근에는 긍정적, 부정적 사고 외에 ‘원영적 사고’가 인기다. “내가 연습을 끝내고 딱 물을 먹으려고 했는데 글쎄 물이 딱 반 정도 남은 거야. 다 먹기에는 너무 많고 덜 먹기에는 너무 적고 딱 반만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럭키비키자나.”
원영적 사고는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일종의 밈이다. 마지막에 붙는 럭키비키는 럭키와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가 합쳐진 말이다.
부산은 청년층이 유출되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과 바다’는 어느새 부산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부산의 고령화 속도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다. 2022년 기준 부산의 50세 이상 인구는 153만 2000명으로 전체의 46.5%를 차지했다. 둘 중 하나는 50세 이상인 ‘장노년’인 셈. 203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도시에서 청년이 사라지는 것은 부정적인 부분이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힘을 내어 원영적으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물론 모든 선진국들이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어. 노인 관련 산업이 앞으로 유망할 거야. 이를 테스트해 볼 시장이 필요해. 다른 지역에서 실험하기엔 다른 인프라가 부족해 어려웠는데 규모와 수요를 모두 갖춘 부산이 딱 맞네. 완전 럭키부기자나.’ 참고로 부기는 부산시의 소통 캐릭터다.
실제로 원영적 사고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스타트업도 있다. ‘웨이어스’는 실버세대의 관심사에 기반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골프·재테크·여행·건강 등 5060세대가 즐길 수 있는 주제를 선정, 오프라인 특강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한다.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는 만성기저질환자를 위한 특수 헬스케어를 전문으로 하는 부산의 스타트업이다. 재활운동 센터인 ‘어댑핏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며 AI·모션센서 등 최신 ICT 기술이 도입된 ‘어댑핏플러스’라는 맞춤형 운동장비를 개발한 업체다.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규모의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사업 모델들이다.
부산은 따뜻한 날씨와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 그리고 제2의 도시 인프라 덕에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기에 의료 시설도 풍부하니 금상첨화다. 복잡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유있는 '골든 시니어'들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 최근 부산 해안가를 중심으로 골든 시니어를 위한 고급 시설들이 추진되는 배경에는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의 5060세대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각종 연금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추고, 건강 관리도 일찍부터 해 충분한 소비력을 갖춘 이들이 많다. 경제력을 갖춘 시니어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실버 비즈니스 모델은 더 단단해진다. 테스트베드로서 부산이 가지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보여지는 이유다.
미국은 시니어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도시 생태계를 만든 곳들이 있다. 플로리다는 '더빌리지스'와 같은 대규모 은퇴자촌을 중심으로 이뤄진 도시가 많아 퇴직 후 가고 싶은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라구나우즈 빌리지’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아이치현 오부시는 국립장수의료센터를 중심으로 도시 내 건강 의료 복지 요양시설이 들어서 하나의 산업군을 이룬다.
'원영적으로' 타이밍 좋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지원체계도 완성되고 있다. 중기부는 올해 부산 주력산업으로 초정밀소재부품, 저온고압에너지공급시스템과 함께 실버케어테크를 선정했다. 또 부산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인 KDB산업은행이 지난 4일 ‘KDB 넥스트원(NextONE) 부산’을 개소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부산시도 올해 연말까지 창업지원 전담 기관인 부산창업청을 설립한다. 창업청을 중심으로 창업지원 운영체계를 고도화하고 창업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등 지역 창업생태계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부산 북항에도 스타트업파크가 들어서 새로운 먹거리 개발에 나선다. 이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싶은 청년들을 위한 지원체계가 하나둘 갖춰지는 셈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이 다시 청년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부산의 문제라고 생각됐던 노인과 바다가 부산을 되살리는 키가 되다니 이건 완전 럭키부기자나'라고 원영이처럼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4-06-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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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AI 전쟁, 미디어의 운명은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과거 인터넷, 모바일 혁명에 비해 더 강하고 빠르게 AI 환경이 급변한다. 글로벌 경제의 주요 플레이어인 대한민국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그중 미디어 업계는 이른바 AI로 인한 ‘탈중개화’로 큰 위기를 맞았다. 소셜미디어, OTT에 이어 생성형AI 서비스마저 견고하던 ‘미디어-독자(시청자)’ 관계를 깨뜨리고 직접 소비자에 닿은 것이다. 이용자가 미디어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이미 왔다는 위기감이다. 대규모 AI 학습으로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미디어 콘텐츠가 절실한 AI기업과 세계 미디어 업계 사이에 생존을 건 치열한 전쟁이 한창인 이유다.
지난달 29일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 티볼리 콩그레스 센터. 영국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그룹 후안 세뇨르 회장이 연단에 섰다. 그는 매년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의 가장 마지막 순서에 등장해 세계신문협회(WAN-IFRA)와 함께 준비한 세계 미디어 연례 혁신 보고서를 공개한다. 75개국에서 온 350여개 언론사 리더와 관계자 1000여 명이 숨을 죽이고 그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세뇨르 회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디어는 신뢰를 잃으면 독자를 잃습니다. 신뢰를 얻으면 독자를 얻지요.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신뢰입니다. 세계 미디어는 투자를 놓치지 말고 서둘러 신뢰 회복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미래에는 넘쳐 나는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는 미디어에 소비자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용자의 8% 정도만이 ‘AI를 신뢰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미디어 업계는 사실 미디어 콘텐츠가 없다면 AI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AI 학습을 위해서는 위키피디아나 기업 웹사이트, 학계 데이터에 더해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언론사 콘텐츠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AI기업과 협상 테이블에 나선 미디어의 힘이므로, 글로벌 검색 포털과 개별 계약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던 과거 사례를 답습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크다. 미디어 업계는 그간 IT 발전에 따른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급속도로 쇠퇴하며 줄도산을 겪는 미디어 빅뱅을 겪어왔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듯, 올해 총회의 주제 역시 ‘AI시대 뉴스미디어의 미래’였다. 3일간 마련된 프로그램 중 절반 이상이 AI와 관련된 것이었다. 당연히 챗GPT로 생성형AI 서비스를 주도하는 오픈AI 등 테크기업과 미디어 사이에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AI학습에 따른 저작권과 보상 문제가 논의의 핵심이다. 오픈AI 미디어 파트너십 책임자인 바룬 셰티는 한 세션에서 “오픈AI는 협력자로서 언론과 관계를 맺고 많은 기회를 주려한다”고 강조했다. “오픈AI는 저작권 침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요?” 그를 향해 참석자들의 날 선 질문이 계속 이어지며 박수까지 터져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적재산권 전략 고문이었던 오픈AI 지적재산권·콘텐츠 부문장 톰 루빈도 대담을 통해 “오픈AI는 대기업은 물론 소규모 독립 미디어들까지 기술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세계신문협회와 체결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개했다. 하지만 기조연설을 한 파이낸셜 타임스 최고경영자 존 리딩은 “콘텐츠 도달 범위를 확장시키고 사용자가 AI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영향력을 가진 우리는 AI기업에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이다”고 강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AI가 뉴스 콘텐츠를 활용하는 사용량과 수익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지금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면 함께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는 제안을 던진 것이다.
이런 갑론을박 속에서도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누구도 AI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신문협회 조사에 따르면 이미 세계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AI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기자들 역시 취재 과정에서 생성형AI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 게 현실이다. 돌파구를 찾지 않고 규제로만 혁신을 질식시키면 결국 역풍에 고사하고 마는 비극에 이를지도 모른다.
깊이와 희소성을 가진 고품질 콘텐츠와 가치 있는 뉴스로 직접 독자와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일, 그리고 AI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AI가 하지 못하는 팩트를 확인해 가치 있는 뉴스 생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것. 그것이 AI시대에 독자 스스로 미디어를 찾게 만드는 운명의 ‘치트 키’이다.
※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2024-06-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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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주항공청(KASA) 사천 개청에 거는 기대
한국 우주시대를 선도할 우주항공청(KASA·Korea Aero Space Administration)이 지난달 27일 경남 사천에서 문을 열었다. 정부가 지난해 4월 우주항공 업무를 전담하는 부처를 설립하는 특별법을 발의한 지 13개월 만이다. 특별법은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청 첫날 윤영빈 초대 청장과 존리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을 비롯한 직원 110명이 첫 출근했다. KASA 총 정원은 293명인데 연내 모든 채용이 마무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으로 주민등록 이전을 마친 윤 청장은 “5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고, 지역과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사천에서 열린 KBS열린음악회에 참석해 지역 사회와의 첫 소통 행보에도 나섰다. 지난달 30일에는 개청식과 함께 ‘제1회 국가우주위원회’도 열렸다.
KASA는 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라 불린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개청 준비 시간이 빠듯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KASA는 법안 통과 4개월 만에 임시청사를 마련했고 업무도 개시했다. 중앙정부 부·처·청이 경남에 설립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인 만큼, 경남에서 KASA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대는 남다르다.
KASA라는 옥동자가 경남에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산고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22년 8월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5대 우주강국’ 진입과 KASA 사천 설립을 약속했다. 우주시대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4월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야 간 정쟁이 심해 수개월간 상임위조차 열리지 못했다. 뒤이어 연구개발 기능 논란 등으로 법안 처리도 순탄치 않았다.
정치권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경남도 내 38개 사회단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KASA 설치를 염원하는 범도민 추진위원회를 발족, 사천에서 관제데모까지 벌이는 열망을 표출했다. 경남도는 선제적으로 우주항공과를 신설하고 ‘우주항공사업 미래 비전’을 수립해 발표하는 등 따른 발빠른 대응으로 KASA 개청 이후 상황에 대비해 왔다.
우주항공 분야는 미래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이자 방위·안보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주 기술은 가야할 길이 멀다. 선진국의 달 탐사용 중대형 발사체, 달 착륙선 등 우주탐사와는 기술격차가 크다. 미국은 이미 우주로켓을 재사용하고 있고, 인간을 태운 우주선을 달 궤도로 보내 탐사하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민간기업 중심으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는 세계 우주항공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KASA가 수도권이 아닌 경남 사천지역에 설치된 중앙부처인 만큼,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제 ‘KASA 개청’이라는 경남도민의 열망은 이뤄졌다. 하지만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KASA가 빠른 시일 내 경남에 안착하고, 설립 목적을 달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경남도는 KASA 개청을 기점으로 경남이 ‘글로벌 우주 항공의 수도’라고 선포했다. 경남은 국내 유일한 항공기 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국형 발사체 엔진을 생산하고 조립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우주항공 관련 기업이 밀집해 있다. 두 업체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부품·소재 협력업체들이 우주항공산업 생태계를 이룬 곳이다.
경남은 또 우주항공산업 생산액, 기업 수, 종사자 수 모두 부동의 1위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주분야 세계시장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KASA 출범을 계기로 이를 10%까지 확대한다는 미래 비전의 중심에 경남이 있다. KASA와는 별개로 민간 주도의 우주항공 생태계 조성을 위한 단계별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우주산업 비전에는 2032년 달 착륙, 2045년 화성 탐사 등 우리나라 우주항공 산업의 청사진이 포함돼 있다. 우주항공 개척을 표방하는 KASA가 경남의 조선·기계·방위 등 기존 주력산업과 동반성장하는 과정에 세계 인재들이 경남으로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남도는 KASA 파급효과로 지역에 기업 2000개 이상 육성하고, 50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구 11만 명 내외 중소도시인 사천의 정주여건 개선도 필수적이다. 롤 모델은 프랑스 ‘툴루즈’다. 이곳은 우주항공 중심도시가 되면서 도시 인구 50만, 주변 광역권 인구까지 100만을 자랑하는 프랑스 4위권 대도시로 성장했다. 경남도와 사천시는 산업·연구·국제교류·교육·행정 등 우주항공 분야 전반을 집적한 ‘우주항공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배가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2024-06-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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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술관을 즐기는 나라
“독일에 가고 싶다.”
동네 책방에서 구입한 책에서 시작된 생각이다. 〈독일 미감〉에 소개된 뒤셀도르프 미술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립미술관의 소장품을 볼 수 있는 K20과 K21에 관심이 갔다. 상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미술관 이름도 재미있고, 오래된 주의회 의사당을 개조한 K21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독일에서 컬렉터가 가장 많이 산다는 지역의 미술관 소장품은 어떨까도 궁금했다. 올해 장기근속 휴가 대상자가 되면서 머릿속 독일행을 실천할 기회가 왔다.
지인들이 인근 다른 미술관도 추천했다. 노이스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 쾰른 대교구 미술관 ‘콜룸바’, 초콜릿 사업가 부부의 작품 기증으로 만들어진 ‘루드비히 미술관’이 리스트에 올랐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과 ‘함부르거 반호프’까지 지난달 독일 여행에서 총 7곳의 미술관을 찾아갔다. 방문지마다 미술관 건물이나 운영 방식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시 운도 좋았다. 기차 시간을 바꿔 찾아간 K20에서는 힐마 아프 클린트와 바실리 칸딘스키 2인전을 봤다. 지난해 말 다큐로 알려진 최초의 추상화가 아프 클린트의 작품 앞에서 감탄했다.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서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전을 예약 없이, 틈새 시간에 관람하는 행운도 누렸다. 각 미술관 소장품 전시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세계적 거장부터 잘 몰랐던 독일 작가들의 명작까지 아울러 보여줬다.
여행을 준비하며 읽은 〈독일 미술관을 걷다〉에는 독일인의 유별난 미술관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책은 2010년 기준으로 독일 전역에 620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시설이 16개 연방의 도시마다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국민 전체가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공평하게 누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독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술과 예술 공간을 즐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미술관 관계자가 ‘강추’한 인젤 홈브로이히는 뒤셀도르프에서 차로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카를-하인리히 뮐러는 버려진 목초지를 야외 미술관으로 바꿨다. ‘풍경과 건축과 예술의 앙상블’을 목표로 한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지도를 보며 들판 위에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전시장을 찾아간다. 때론 비어있는 건물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된다. 이곳에는 작품 설명문이 없다. 관람객은 정보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각으로 예술을 받아들인다. 전시장 지킴이나 금지 사항 푯말도 없다. 안내문을 보니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관람 후에는 입장료에 포함된 카페테리아의 간소하지만 건강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지팡이를 짚고 온 노인, 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이 산책하듯 놀이하듯 예술과 자연을 느꼈다.
K21 미술관은 궁처럼 보이는 외관과 현대적 내부, 유리 돔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0층(1층)과 꼭대기 층 로비에 빈백을 두고 누구나 누워서 건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현지 청소년들이 빈백 위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기차역 건물을 개조한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봤다. 정원과 미술관 내부 곳곳에 비치된 캠핑용 간이의자에서 젊은이들이 쉬고 있었다. 미술관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장의 유리 벽 앞에 놓인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때 기차역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과 작은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뒤쪽 전등의 ‘MUSEUM’ 글자가 초록 자연 위에 반사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독일인은 일상 가까이에서 미술과 미술관을 즐기고 있구나.
미술관을 즐기기 위해서는 장벽도 없어야 한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특별전은 관람객 연령대가 높았다. 북적이는 전시장 안에서 이동형 뮤지엄 체어에 앉은 두 할머니를 봤다. 마음에 든 그림을 차분하게 감상하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일정인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도 무장벽 전시 관람을 봤다. 피카소, 달리, 모딜리아니 등 거장의 작품이 즐비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일부 작품 아래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점자 설명과 함께 르네 마그리트, 바실리 칸딘스키 등의 그림 도상을 시각장애인이 손으로 만져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에도 도입되어 있지만 아직 흔하지 않은 풍경. 국내 미술관에서 더 자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독일 미술관의 저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차별 없는 예술 향유권을 위한 정책과 예산 지원, 기증 문화의 저변 확대, 성숙한 관람 문화 등이 합쳐진 결과다. 언젠가 부산의 미술관이 누군가의 여행 목적지 1순위에 오르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2024-06-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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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침몰 우키시마호, 누구의 역사인가
지난 24일 ‘우키시마호 승선 명부’라는 제목으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그는 일본의 독립기자 ‘후세 유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키시마호의 명부의 건으로 기사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툰 한국어 문장 속에서도 정중함이 묻어났다.
후세 씨는 전날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받아낸 인물이었다. 한국인 강제징용자 수천 명을 태운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4일 의문의 폭발과 함께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그간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가 배 침몰과 함께 사라졌다고 주장했지만, 후세 씨가 이를 뒤집는 문서를 확보한 것이다.
일본 교도통신이 이를 즉각 보도한 데 이어 본보를 포함한 국내 언론도 집중 조명했다. 80년 가까이 지쳐 있던 유족도 다시금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후세 씨가 잊혀 가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셈이다.
그런 그가 박수를 받기도 전에 먼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국 기자에게 말이다. 마치 ‘자기 역사’를 알리기 위해 함께 힘써준 것이 고맙다는 듯 보였다. ‘남의 역사’인양 우키시마호 사건을 외면해 온 대한민국의 한 언론인, 시민으로서 부끄러웠다.
우키시마호 승선자뿐 아니라 524명의 사망자 명부도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현지 사찰로부터 넘겨받아 보관 중이다. 지난해 일본 교토지역 교사들로 구성된 ‘마이즈루모임’ 사무실을 찾았을 때 명부 원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나다 시게루 회장은 캐비닛 안 흰색 한지로 고이 싸인 명부를 두 손으로 조심히 꺼내 내려놓았다. ‘우키시마마루 사몰자 명부’라 적힌 서류는 색이 바래고 곳곳이 해지는 등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마이즈루모임의 캐비닛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였다. 1952년 1월 인양 후 바로 서 있는 배 사진, 사건 관련 신문 스크랩 등 우키시마호 참상을 기록·규명할 유산으로 가득했다. 당시 시나다 회장은 취재진에게 우키시마호 기획이 실린 〈부산일보〉 신문을 제공해 줄 수 있느냐며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산에 우키시마호 기념 공원이 생긴다면 이 모든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우키시마호 승선자, 사망자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들은 국가의 부재로 인해 가족을 등지고 타향 길을 떠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배에 탄 수천 명의 동포가 일본 앞바다에 잠겼지만, 한국 정부는 또다시 부재했다. 진상 규명과 피해자 신원 확인에 가장 필요한 승선자, 사망자 명부의 존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유족들이 79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인의 이름 ‘석 자’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에서 직접 승선자, 사망자 명부를 찾아줬음에도 ‘무관심’은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이번에 공개된 승선자 명부를 언제 확보하느냐는 질문에 “(명부의)실체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며 또다시 물러섰다. 한 발 더 물러가 “일본 정부는 실제 승선자 명부가 아니라, 사건 이후 조사하면서 작성한 명부라고 하지 않느냐”며 일본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사고 이후에 조사했든 아니든 간에 일본이 공개한 ‘승선자 명부’임이 틀림없다면 하루빨리 이를 확보해 추가 피해자 신원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 후세 씨가 확보한 명부는 이름, 본적, 소속 등 개인정보가 모두 가려졌다.
더불어 일본 정부를 대변할 게 아니라 승선자 명부를 둘러싼 그들의 은폐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간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사후 대응 전반이 의심받을 수 있다. 미제로 남았던 우키시마호 사건이 새 국면에 돌입하는 셈이다.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은 강제징용, 해방, 귀향 동포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모두 담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다. 한국 정부는 역사를 규명·기록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일본 사찰과 마이즈루 앞바다에 남아 있는 유해 봉환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세계 최대 해양참사로 꼽히는 사건이지만, 여태껏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등재되지 않았다. 피해자를 추모하고 사건을 알릴 번듯한 기념공간조차 없다. 시민 모금으로 추모비를 세우고, 우익단체의 ‘페인트 테러’에도 굳건히 기념공원을 지켜온 마이즈루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우키시마호 역사를 인양할 마지막 기회가 마련됐다. 사건을 기억하는 생존자와 유족 모두 고령에 접어들었다. 더는 그들의 외로운 싸움으로 끝나지 않도록, ‘고국’이 앞장서 주길 기대한다.
이승훈 해양수산부장 lee88@busan.com
2024-05-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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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부 공간혁신구역 공모, 양산엔 큰 기회
지난달 낙동강 하구 지역 6개 자치단체로 구성된 ‘낙동강협의회’와 함께 미국 뉴욕시 허드슨 야드를 벤치마킹하는 기회를 가졌다. 허드슨 야드는 250억 달러(한화 32조 원가량)를 들여 허드슨강변의 낡은 철도역과 주차장, 공터 11만㎡ 부지를 재개발한 곳이다.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소개되면서 우리나라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허드슨 야드에서는 주거·상업·문화·업무시설이 복합적으로 들어선 20여 개의 독특한 초고층 건물을 볼 수 있었다. 뉴욕시가 합리적인 용도 지역 운용으로 이런 건물이 건축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벌집 모양 건축물 ‘베슬’은 고가철로에 조성한 공원 ‘하이라인’과 연결되면서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국토교통부는 허드슨 야드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처럼 규제를 전면 완화해 도시 변화를 꾀하는 ‘공간혁신구역(화이트존) 선도 사업’ 공모를 추진 중이다. 공간혁신구역은 국·공유지 등 사업 추진이 용이한 지역에 국토부와 지자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 시행자가 협력해 추진하는 공공주도 사업을 말한다. 사업에 선정되면 땅의 용도와 용적률, 건폐율 등 밀도를 자유롭게 계획해 개발할 수 있다. 노후 항만배후부지였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는 화이트존을 통해 주거·관광·국제 업무가 복합된 명소가 됐다. 인구 감소로 도심 공동화를 고심하는 지자체로선 눈길을 끌 수 있는 사업이다.
양산시는 정부의 공간혁신구역이 흉물로 방치 중인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54만 2000㎡)와 통도환타지아 부지(28만 8581㎡)를 개발할 좋은 기회로 보고 공모를 신청했다.
110만㎡의 부산대 양산캠퍼스는 2000년 4월 분양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양산신도시의 구원투수로 깜짝 등장했고, ‘분양 활성화’와 ‘지역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부산대가 양산캠퍼스에 계획한 것들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불만이 쌓였고, 2015년 외부로 분출됐다.
이후 양산시와 정치권 등이 양산캠퍼스 유휴부지 개발을 위해 연구시설을 유치하고 개발이 가능하도록 법까지 개정했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다.
양산캠퍼스 유휴부지가 화이트존으로 선정되면, 4000가구의 주거단지와 연구단지, 문화시설, 공원 등이 들어선다. 윤영석 국회의원도 민자 6조 원을 유치해 의료 복합단지인 ‘양산 메디 허브 시티 개발’을 공약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영남 최대 규모 테마·놀이시설인 하북면 통도환타지아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양산 경제의 ‘복덩이’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1993년 5월 개장한 통도환타지아는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을 이유로 휴장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재가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하북 지역은 물론 양산 경제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시는 통도환타지아 재가동 방안을 찾았지만,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적극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간혁신구역으로 선정되면 테마 빌리지와 복합테마파크, 스포츠콤플렉스 단지 등이 추진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통도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커져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부산대 양산캠퍼스의 경우 LH가 유휴부지를 매입해야 하지만, 부산대와 매입가 입장 차이로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남도와 양산시, 정치권이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공간혁신구역 선정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통도환타지아는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 사례같은 문제는 없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 내 2곳의 후보지가 동시에 공간혁신구역에 선정되기가 쉽지 않다. 전국에서 워낙 많은 지자체가 공모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양산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산대와 LH 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중재와 압박을 병행했으나, 지난 21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국회의원 당선인(2명)과 도·시의원 모두를 초청해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부산대와 LH는 경남도와 양산시, 시민 바람대로 공간혁신구역 선정이 흉물로 방치 중인 양산캠퍼스 유휴부지 개발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합의점 도출을 위해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과 양산시민, 시민단체 역시 부산대와 LH가 합의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압박하는 동시에 2곳의 부지가 공간혁신구역에 선정될 수 있도록 지역 실정을 정부에 알리고 설득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
2024-05-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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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시민과 주주 동시에 감동시키기
자고로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정겨운 식당 간판이 손님을 부르기도 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제품명이 매출을 올리며, 고급스러운 이름이 기업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름이 소비자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당사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정체성을 담아 사명을 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명에 담긴 의미는 기업의 지향점이 되고, 기업 종사자에겐 지켜야 할 가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부산일보’에서 오래 일해본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기도 하다. 사명에 부산이 담겨 있다 보니, 일단 매사를 지역의 관점에서 먼저 살펴보게 된다.
BNK금융그룹도 비슷할 것이다. 대표 계열사인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엔 지역명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BNK라는 그룹명에도 ‘부산과 경남’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대놓고 부울경이 정체성이라고 밝히는 기업이다 보니, 당연히 지역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활동이 사회공헌이다. 부산은행의 경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407억 원을 사회공헌에 썼다. 당기순이익의 11.7% 규모다. 지난해 사회공헌에 쓴 비용은 548억 원으로, 당기순이익의 14.5% 수준이다. 부산은행은 소외계층 지원에 적극적이다 보니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선정한 부산 나눔명문기업 1호가 됐다. 현재 ‘동백전’을 운영하며 얻는 수익 전액은 지역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28년간 부산국제영화제에 지원한 금액만 121억 원이다.
보통의 기업에서 매년 벌어서 남는 돈의 10% 이상을 사회에 나누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직원들이 “그 돈으로 월급을 올려라”며 들고 일어날 법도 하다. BNK금융그룹에서 이런 사회공헌 활동이 가능한 건 부울경에 뿌리를 뒀다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사내 문화가 있고, 직원들도 이를 공유하고 있다.
큰 규모의 사회공헌 활동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투자자나 주주의 입장에선 지나친 사회공헌은 반이윤적인 활동으로 비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주주의 이익을 늘리거나, 남은 돈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쓰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외면하면 기업은 투자자들이 떠나고, 경쟁에서 뒤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BNK금융그룹 주가는 올 1월과 비교해, 5개월여 만에 20% 이상 상승했다. 다른 지역 금융지주사보다 월등히 높은 상승폭으로, 최근 증권사들은 BNK금융그룹의 목표 주가를 상향하기도 했다. 주가 상승의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동안 기업 가치가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지난해 선보인 소액주주 대상 IR 행사와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 운동 등이 효과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회공헌을 강화하면서도 기업의 투자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거다.
사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부산은행, 경남은행 그리고 BNK금융그룹의 가장 큰 매력은 이름 그 자체이다. 지역 정체성이 담긴 사명이 직원들에겐 사명감으로 작용하겠지만, 지역 시민에겐 지역의 동반자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부산 시민이 부산은행을 많이 이용하는 건 부산의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지역 기업이 잘되는 게 좋다는 동료 의식의 발현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그런 면에서 BNK금융그룹의 사회공헌은 일방적인 나눔이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이런 활동이 BNK로 시민의 발길을 모은다. 지역과 함께하는 금융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수록 부울경 시민에게 BNK의 매력은 올라갈 것이다. 사회공헌은 나눔이자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이기도 하다.
역으로 BNK금융그룹이 이윤이 줄어 투자자들이 떠나는 기업이 되다면, 부울경 전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사회공헌 규모가 축소되는 건 부수적인 문제다. 지역 금융사가 흔들리고 자금에 문제가 생기면, 지역 소상공계부터 주력 산업계까지 지역 경제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BNK가 지역에 공헌하고, 부울경 시민도 상응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거다. 그러면 BNK는 지역에서 신뢰받는 기업으로 보일 것이다. 투자자들은 외부의 악재가 있어도 지역이 지켜주기에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을 기업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견고해지면, 사회공헌과 이윤 확대가 공존할 수 있다.
최근 빈대인 BNK금융그룹 회장이 첫 해외 기업설명회를 떠났다. 해외 큰 손들에게 기업의 가치를 알려 투자를 이끌기 위한 자리다. 여러 투자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회공헌 확대와 주가 상승을 동시에 이룬 BNK에 중장기 투자를 하는 이들이 늘고, 그 결실을 부울경이 함께 나누기를 기대해 본다.
2024-05-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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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노인은 돌봄 서비스 이용의 주체
온마을사랑채는 동의과학대 산학협력단에서 운영하는 학교기업이다. 2020년 8월 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독립적인 식생활이 어려운 부산진구 65세 이상 재가노인을 대상으로 전국 최초로 맞춤형 식생활돌봄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다. 온마을사랑채 센터장인 동의과학대 한진숙 외식산업학부 교수는 정부의 ‘지역사회통합돌봄 시범사업’에 참여한 부산진구와 의기투합해 온마을사랑채를 시작했다. 온마을사랑채는 재가노인 약 180명에게 매달 24회의 식사와 별도의 영양 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노인들의 개별 건강 상태, 질병과 기능적 영양을 고려한 맞춤형 식사 비용은 한 달 기준 1인당 22만 5000원이다. 대상자들은 소득 수준에 따라 주로 5만~10만 원을 부담한다. 온마을사랑채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역사회서비스사업 예산을 받아 차액을 지원한다. 온마을사랑채는 2023년부터는 부산시의 ‘부산형 통합돌봄’ 사업 예산을 부산진구를 통해 지원받고 있다. 지역통합돌봄을 위해 지역의 여러 주체가 참여한다. 부산진구 동주민센터 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식사 돌봄 대상자를 발굴하고, 온마을사랑채 영양사는 식사영양관리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된 노인의 건강과 식사에 대한 기초 상담을 바탕으로 맞춤형 식사를 제공한다. 식사 배송자들은 식사를 제공하면서 안부도 묻고 일상을 살피는 통합돌봄관리자 역할을 한다.
한 교수는 “양질의 급식 영양서비스는 국가적·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킨다”며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위해 재가노인 단계부터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노화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에 지역통합돌봄의 핵심이 녹아 있다. 지역통합돌봄은 돌봄이 필요한 주민(노인,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들이 살던 곳(자기 집, 그룹홈)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일상생활의 지원이 통합적으로 확보되는 지역 주도형 정책이다. 주거, 의료, 케어안심주택 등 영역까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대상자로 저소득층에 한정하지 않고, 돌봄서비스 욕구를 가진 65세 이상의 전 계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사회서비스 사업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2019년 노인, 장애인, 정신장애인, 노숙인을 대상으로 ‘지역통합돌봄 시범사업’을 시작해 2025년까지 전 동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2022년 중단됐다. 부산에서는 부산진구와 북구가 노인 대상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선정돼 2022년까지 이 사업을 수행했다. 중앙정부의 지역통합돌봄 선도사업이 종료되자 부산시는 2023년부터 민선 8기 시장공약사업으로 ‘부산형 통합돌봄’ 사업을 16개 구·군으로 확대해 수행 중이다. ‘부산형 통합돌봄’ 사업은 필수사업(가사 지원, 식사 지원, 돌봄활동가 지원), 자율사업(케어안심주택, 주거환경 개선, 병원 이동) 등으로 나뉜다.
노인 인구가 많은 부산에서는 지역통합돌봄 안착과 확대가 필요하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외국인 미포함)에 따르면 부산의 노인인구는 2023년 12월 기준 74만 5199명으로 부산시 전체 인구 329만 3362명의 22.63%에 달한다. 부산은 2021년 노인 인구가 20.35%에 달하며 특별시·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3월 ‘부산시 지역사회통합돌봄 조례안’이 부산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제정됐다. 이로써 부산시는 통합돌봄서비스 전담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긴급돌봄·일상생활 지원 등 돌봄 지원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노인은 인간답게 돌봄을 받아야 하고 돌봄의 선택권이 많아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노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노후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가진 서비스 이용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노인의 건강 상태, 질병, 경제수준, 가족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생활 지원과 요양욕구를 통합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통합돌봄 선도사업 대상지역에서 실시된 온마을사랑채의 부산진구 재가노인 ‘맞춤형 식사 서비스’, 부산진구 1인 가구 노인을 위한 ‘도란도란 하우스’, 북구의 영구임대 아파트를 개조한 ‘케어안심주택’ 등은 노인 돌봄서비스 대상자에게 수준 높은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처럼 통합돌봄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인정자이거나 기초생활수급자에 한해 좁게 이뤄졌던 노인 돌봄의 폭을 넓히면서 향후 사회적 돌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지역통합돌봄 사업을 시행하면서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지원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선 복지현장과 공공기관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며 노인의 욕구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상훈 독자여론부 선임기자 neato@busan.com
2024-05-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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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정치권, 전창진 감독에게 배워라
부산에 새로 둥지를 튼 프로농구 부산 KCC가 27년 만에 시민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야멸차게 부산을 버리고 수원으로 떠난 KT를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1패로 무릎 꿇렸다. 그래서 더 통쾌하고 값진 승리다.
부산 KCC의 쾌거는 명장 전창진 감독의 탁월한 용병술 덕분이다. 그는 혹독할 정도로 선수단을 몰아붙여 강한 체력과 빡빡한 수비를 주문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습 상황을 유도해 내는 트랜지션 플레이의 대가다. 그러나 득점 확률이 높다고 역습과 속공만으로는 정상에 오를 수 없는 일. 화통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 감독은 지공 상황의 지능적인 패턴 플레이를 잘 만들기로도 유명하다.
야구가 기세의 스포츠라면 농구는 완급의 스포츠다. 전 감독이 연고지를 옮기자마자 부산에 우승 트로피를 선물할 수 있었던 건 속공과 지공 상황을 가려가며 경기의 완급을 지배한 덕이다. 속공 상황에서는 폭풍처럼 몰아치지만, 일단 상대가 수비 진용을 갖추면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팀원 간에 약속된 패턴으로 득점 확률 높은 플레이를 펼친다.
지금 부산 정치권에는 돌아온 명장의 돌아온 완급 조절 능력이 절실하다. 대대적인 현역 물갈이로 이달 말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의욕에 불타는 초선 의원들이 많지만 아쉽게도 부산의 현안은 현재 속공 상황이 아니다.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의 21대 국회 내 처리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이제는 물리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했다. 결국 22대 국회에서 재논의해야 할 판이다. 이미 ‘중앙 부처’와 ‘수도권 여론’이라는 상대 팀은 이미 백코트해 골밑으로 가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을 기세다.
부산은 수도권 밀집이라는 망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남부권 경제의 새로운 축이 되어야 한다. 그게 이 도시의 시대적 사명이다. 온 나라가 나서서 월드엑스포 유치를 기원했고, 이후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민심 달래기에 열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의적절한 성장동력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엑스포 유치가 불발됐다. 부산시와 정부가 차선책으로 내놓은 게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다. 엑스포 불발 이후 동정 여론과 윤석열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약속이 있었던 터라 부산은 속공을 선택했다. 범정부 TF를 꾸려 올해 상반기 안에 법안을 만들어 발의하겠다며 빠르게 이를 밀어붙여 왔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고 여소야대 국면이 시작되자 중앙 부처는 언제 그런 논의를 했냐는 듯 딴청을 피운다. 인천도 판박이나 다름없는 글로벌경제거점도시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 입장에서는 선뜻 요란한 특별법 추진이 망설여지는 대목이다.
22대 국회에서 부산 정치권은 부산의 열망을 구현할 다른 루트나 논리를 찾아내거나, 다양한 대야 협상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지공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올해 초처럼 정면 돌파만 고집하다간 수도권이나 중앙 부처의 논리에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지역에서조차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 중앙 부처의 칼질로 선언적인 형태의 빈껍데기 전락했다며 전 분야에 걸친 특례를 요구하기보다 복합리조트 등 굵직한 현안부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실제로 일부 야당 인사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과정에서 부산 정치권이 지나치게 강공 일변도였던 것이 자충수가 됐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규모 2차 공공기관 전면 이전과 발맞춰 명분을 쌓거나, 산업은행급의 별도 공공기관 이전을 호남과 병행하는 유연함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지공 상황을 맞은 부산 정치권은 이 같은 지역의 열망을 수집해 특별법 제정의 공격 전술을 재고해야 한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분산에너지법 내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 큰 틀에서는 맥락을 같이 한다. 원자력발전소라는 혐오시설을 안고 수십년 간 소비량보다 곱절 많은 전력을 생산한 지역이 줄곧 전기만 소비하는 수도권과 전기요금이 같아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다들 눈뜨고 있다. 전국의 원전 밀집지역과 연대하는 한편 전기요금 인하가 곧바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산업계 여론까지 더해 지능적인 패턴플레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빠르고 화끈한 속공은 팬을 열광케 한다. 개원만 손꼽아 기다리는 부산의 국회의원도 속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 부산 시민이 바라는 정치 플레이는 빠른 속도와 전개가 아니라 확실한 득점이다. 거기에 내가 부산 현안의 1옵션 공격수라는 책임감까지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권상국 정치부 차장 ksk@busan.com
2024-05-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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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22대 부산 당선인들, 어떤 꿈 꾸나
4·10총선으로 부산 정치권이 새 진용을 갖췄다. 전체 18명 중 3선 이상 중진 3명, 초·재선 7명 등 무려 10명의 현역이 당내 공천과 선거를 통해 ‘원외’ 신세가 됐고, 그 빈자리만큼 새 인물들이 채워졌다. ‘15 대 3’이던 여야 비율은 ‘17 대 1’로 전국과 달리 부산은 국민의힘 의석이 더 많아졌다. 지역 정치권 전체 경쟁력을 고려하면 여야 균형의 붕괴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장·차관, 교총 회장, 대학 총장, 부시장 출신 등 ‘고스펙’에 전문성을 갖춘 새 당선인들의 면면을 보면 21대보다 의원 개인 경쟁력은 ‘업그레이드’ 됐다고 평할 만하다.
20년 가까이 여의도 언저리에 있었던 경험에 비춰보면 좋은 스펙과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사들에게 ‘배지’는 화려한 커리어의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다만 ‘제2의 도약’과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갈림길에 선 지역의 정치인들이 단지 선수 연장을 위해 영혼 없이 계파 정치에 골몰하거나, ‘골목 정치’에만 매달린다면 유권자들로선 불행한 일이다. 18명의 여야 의원들에게 지역 현안의 운명을 걸고 있는 부산의 사정은 더 그렇다.
최근 10년 새 부산의 그랜드 디자인을 새로 그린 대형 사업을 되돌아보면 사명감을 갖고, 집요하게 파고든 그 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운명이 갈렸다. 21대 국회에서 부산 정치권의 굵직한 성과 두 가지가 대표적 사례다. 하나는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부산월드엑스포 유치가 2022년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정과제로 채택된 것이고, 또 하나는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2021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두 ‘명장면’을 만드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이 기여했지만, 그 중 국민의힘 장제원,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두 의원의 노력과 헌신은 각별하게 기억될 만하다.
충청 출신으로 사실상 ‘서울 사람’인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은행 이전, 엑스포 유치를 통해 부산을 서울에 필적하는 국가발전의 ‘양대 축’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당선인 시절부터 확고한 의지로 표출한 데에는 최측근인 장 의원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는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인수위 조직에 ‘부산엑스포 유치 TF’ 신설을 주도했고,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반대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질타하는 등 ‘정권 실세’라는 신뢰 자본을 지역 비전에 아낌없이 투입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집중되는 당선인 비서실장이 타 지역 반발을 무릅쓰고 지역 문제에 총대를 메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그런 부담감을 묻자 “내가 이런 일 하려고 실세 하는 거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장 의원의 거침 없는 스타일을 비호감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 특유의 저돌성으로 부산 재도약의 꿈을 향한 초석 하나를 놓았다는 사실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 엑스포 유치 결과는 많은 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지만, 적어도 부산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전 시민들이 하나의 꿈을 위해 달렸던 그 과정까지 무가치한 일로 여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부산의 2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을 되돌릴 수 없는 사업으로 확정한 특별법 통과 과정에서 최 의원이 어떤 물밑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가덕신공항 추진의 최대 난관은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최종 판단을 맡은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의 주된 기류는 ‘그냥 써도 큰 문제없다’는 쪽이었다. 이때 법제처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김해신공항 재검토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뒤에는 당 수석대변인으로 이 대표에게 부산 민심을 전하는 동시에 국토교통부 등 주무 부처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특별법까지 조율한 최 의원이 있었다. 특히 법안의 막바지 처리를 앞두고 각별했던 부친의 상중에도 주야 없이 동분서주하던 최 의원의 모습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공교롭게도 부산의 꿈을 위해 뛰었던 두 의원 모두 각자의 이유로 22대 국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득표효과로만 보면 전체 지역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것이 내 지역구에 다리 하나 놓는 것만 못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체를 위한 희생이 필요한 일에는 그저 시늉만 하면서 표 되는 지역구만 파고들자는 게 22대를 준비하는 당선인들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22대 국회 거대 야당과 지역의 소통채널은 더 좁아졌고, 총선에서 참패한 윤 대통령이 ‘양대 축’에 얼마나 의지를 보일지도 미지수다. 비록 어려운 현실이 놓여 있지만 18명 당선인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시민들이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명장면 하나씩은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전창훈 서울정치부장 jch@busan.com
2024-05-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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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애플·테슬라가 욕먹는 이유
애플은 최초의 대중적 스마트폰 아이폰을 만든 기업으로 글로벌 시총 1~2위를 넘나들고 있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CEO(최고경영자)였을때 애플은 아이폰 덕분에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아이폰은 국내에선 젊은층에 유독 인기가 높다. 지난해 갤럽조사에 의하면 18~29세에서 65%라는 엄청난 점유율을 보였다. 2013년만 해도 25%이던 것이 3배가량 뛴 것이다. 삼성 갤럭시가 70% 안팎, 애플이 20%대를 각각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 세대의 점유율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아이들에게 “왜 아이폰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디자인이 갤럭시보다 예쁘고 사진도 잘 나온다”, “다른 기기랑 호환이 쉽다”고 답한다. 심지어 “갤럭시를 쓰면 왕따 당한다”며 아이폰이 친구 무리를 묶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기 있는 애플이지만 사회공헌활동이나 법인세로 들어가보면 좀 다른 모습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애플코리아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 2022년 매출은 7조 5240억 원에 영업이익 5599억 원이었다. 다만 기부금은 감사보고서 항목에 표시되지 않았다. 기부금 항목이 없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액수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비슷한 외국계 IT기업들의 공시를 보면 기부금에서 페이스북코리아는 2022년 1억 8000만 원에서 지난해는 한 푼도 내지 않았고,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코리아는 지난해 각각 7677만 원, 5000만 원을 냈다.
1988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애플코리아는 감사보고서에 기부액을 표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09년 매출,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유한회사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감추려는 것이라는 비난까지 샀다. 그러다가 2020년부터 유한회사에도 공시 의무가 발생하면서 매출, 영업이익, 기부금 등이 드러났다.
애플코리아는 납부 법인세가 적정한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애플코리아는 2022년 법인세 503억 원을 냈는데, 매출원가(생산원가)를 약 90% 수준으로 높게 책정해 영업이익과 그에 따른 법인세를 적게 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기부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100만 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는 없었고 전에 있었던 애플의 자선프로그램도 폐지했다. 고인이 된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자와 이건희 회장이 보여줬던 기부 활동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장거리 전기차와 상업용 우주선 등으로 유명한 테슬라도 국내 시장에서 욕을 많이 먹고 있다. 테슬라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 1437억 원에 171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기부금 내역 자체가 없다. 2022년에도 기부금 항목이 없었다.
자동차 업계 내에서 이와 비슷한 매출을 내는 볼보차코리아의 경우 2022년 8억 원, 지난해 12억 원의 기부금을 냈고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하다.
또한 테슬라코리아는 차값을 수시로 올렸다내렸다 하는 바람에 ‘고무줄 차값’으로도 유명하다. 1년새 차값이 3000만~4000만 원 오르내리기도 한다. 일부에선 “차값이 횟집처럼 시세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2016년 한국시장 진출후 올해는 수입차 판매 3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수입차협회 회원사가 아니다.
국내 진출한 일부 명품 브랜드들도 이들 못지않다. 프랑스 디올은 지난해 국내에서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1920만 원에 불과했다. 루이비통은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시계 브랜드 롤렉스도 지난해 국내에서 2944억 원의 매출을 내고도 100만 원만 기부했다. 혁신의 아이콘, 명품 브랜드의 실상은 ‘돈만 좇는’ 외국기업이다.
반면 BMW그룹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일본 화학회사 도레이 등은 외국기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어서다. BMW의 경우 고객들을 위한 전용 드라이빙센터와 LPGA챔피언십, R&D(연구개발)·물류센터 건립 등 한국회사 못지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적 판단이다. 기부금이나 법인세, 사회공헌 활동은 구매시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내가 사용하는 제품의 우리 사회 기여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도 따른다. 글로벌 최고 기업임을 내세우지 말고 기업시민으로서의 혁신과 명성에 걸맞은 자세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2024-05-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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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핵개인의 시대, 가족의 의미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직업적 강박 때문일까. 먼지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제목에 ‘시대’가 들어가는 책이 유난히 많다. 〈과부하시대〉 〈가녀장의 시대〉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고립의 시대〉 등등. 물론 ‘과부하시대’를 사는 현대인답게 모든 책은 한두 챕터씩 띄엄띄엄 읽다 말다 한다. 완독의 길은 점점 더 멀고도 험해진다. 오롯이 한두 시간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이제 공연장과 영화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업무 관련 ‘카톡’이 끊임없이 울리고, 중독성 강한 콘텐츠가 무한정 제공되는 스마트폰을 강제로나마 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정신 없는 와중에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어 직장인들의 허리가 휜다는 5월이 왔다. 치솟는 물가 탓에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가난의 달’이라는 푸념 섞인 이야기마저 나온다.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태 속에 출생률은 해마다 최저 기록을 다시 쓴다.
그럼에도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가정의 달을 맞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다시 펼쳐본다. 주인공 30대 여성은 ‘모부’(작가는 익숙한 한자어의 순서마저도 부모가 아니라 모부로 뒤집어 놓았다)를 직원으로 고용한 출판사 대표이자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녀장’이다. 작가 이슬아는 ‘아비 부’의 자리에 ‘계집 녀’를 적자 흥미로운 질서들이 생겨났다고 썼다. 가부장을 뛰어넘은 새로운 가녀장 체제에서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주인공은 1년간 먹을 주요 식재료인 된장을 담그기 위해 외가로 세 번의 ‘출장’을 떠나는 엄마에게 출장 수당을 지급한다. 가부장이었던 할아버지처럼 엄마의 가사 노동을 공짜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집밥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보너스를 입금한다.
월급도 엄마가 아빠보다 배로 받는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라는 가녀장의 말에도 아빠는 불만이 없다. 하이브 소속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외친 ‘개저씨’라는 혐오 표현이 최근 화제가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아저씨’로 그려진다. 딸이 가족 서열의 정점에 있기에 모부의 방은 지하에 있다.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그림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는 이 유쾌한 소설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가부장제도 아이 울음 소리도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1인 가구는 급증했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1인 가구는 1003만 9114세대로, 전체의 41.8%에 달한다. 열 가구 중 네 가구 이상이 나 혼자 사는 셈이다. 부산의 경우 20대 여성의 1인 가구 증가율이 특히 높다. 2019년 3만 7469명이던 20대 여성 1인 가구는 2022년 4만 8996명으로, 3년 사이 30% 이상 늘었다. 젊은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이 주요 원인(부산일보 3월 8일 자 8면 보도)으로 꼽힌다.
이처럼 ‘핵가구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왔는데도 비혼이나 동거, 동성 결혼, 비혈연 가구 등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나 편견은 여전하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저자 송길영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온 것이 지금은 불편한 단어로 인식하는 ‘정상 가정’이라는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이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를 ‘결손 가정’이라는 폭력적인 표현으로 부르던 때가 있었던 것도 지적한다. 그는 프랑스의 혼외 출생자 비율이 전체의 60%가 넘는다는 점을 들어 “정책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결혼을 장려하는 방향으로만 일원화한다면 결과는 나아지기 어렵다”며 확장된 가족의 의미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 동성 부부 최초로 지난해 아기를 출산해 화제가 된 김규진·김세연 씨. 이들은 얼마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혈연이 중요하지 않다”며 “서로 사랑하고,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임신을 위해 국내에서 정자 제공을 받는 것도 고려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결혼과 출산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거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휴대전화에 빠진 파트너 때문에 결혼 생활 상담사들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며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갉아먹는 세태를 짚기도 했다. 현재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와 핵개인의 삶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정책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이자영 사회부 차장 2young@busan.com
2024-05-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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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실험실 고양이' 된 용산 참모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한다면서 독특한 ‘사고(思考) 실험’을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인 알베트 아인슈타인도 이 문제로 슈뢰딩거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당시에도 반향이 대단했다.
실험은 단순하다. △고양이 한 마리 △미량의 방사성 원소 △방사성이 붕괴되면 깨지는 독극물병을 동시에 밀폐된 금속상자에 넣어둔다. 방사선 원소의 양은 아주 적어서 1시간 동안에 붕괴할 확률과 붕괴하지 않을 확률이 각각 50%이다. 1시간이 지난 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현실에서라면 고양이의 상태는 죽었거나 아니면 살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죽은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상태’로 계산된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 보여서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다음 날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이상 참모진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정책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 등이다. 그 후 20일이 지났는데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 새로 임명됐을 뿐, 나머지 인사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참모들에게 “사의 반려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표를 돌려받지 못했다면 해임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열심히 보좌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임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이렇게 해석했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을 계속 신뢰하면서도, 언제든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중의적’(重義的)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라고. 그럼으로써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또다른 전언으로는 윤 대통령이 “내 책상 안에 있으면 반려지, 굳이 반려해야 하느냐”고 말했다고도 한다. 사의를 밝혔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으니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유임을 언질받은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처지인 것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됐다고나 할까.
이들이 모두 ‘정무직’이기 때문에 행정 절차상의 사표 수리 또는 반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평소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위 참모들이 일괄 사의라는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국정 쇄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결론을 낼지 겉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어느 수석이 유임되고, 어느 참모가 그만두느냐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국정쇄신을 한다면서 고위직들이 모두 사의를 밝혔으면 그 인적개편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소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쇄신한다고 했으니 모조리 사표를 수리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결과를 공유할 때 대통령과 국민들의 진정한 소통이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며 사표를 반려하든지, 아니면 사람을 바꿔 분위기를 일신하든지 분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다.
대통령실은 사의를 표명한 참모들의 거취에는 입을 닫으면서 전임 비서실장의 퇴임식 모습은 조목조목 알렸다. 대변인실은 “대통령은 떠나는 비서실장을 청사 밖 차량까지 배웅했다. 비서실장이 타는 차량의 문을 직접 열고 닫아주며 차가 멀어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서면브리핑까지 했다.
고생한 참모를 마지막까지 배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따뜻한 마음이 국민들에게 아름답게 비쳐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는게 소통이다. 자랑하고 싶은 걸 떠벌리는 건 그냥 홍보다.
국민들이 진짜 알고 싶은 건 국정쇄신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는지, 쇄신의 일부분인 인적개편은 어떻게 매듭짓는지이다. 출입기자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는 것보다는 이런 궁금증 해소가 우선이다.
2024-05-01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