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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 400건

제공처 정보

  • 1941년 오사카에서 쌍둥이의 형으로 태어났다. 일본 제1의 상업도시 오사카라기보다는 오사카 외곽 출신의 '촌뜨기'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이 안도 다다오의 최종 학력이다. 실제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학교에 잘 다니지도 않았기에 학교에서 무엇을 크게 배웠다고 볼 수도 없다. 고교 말년 쌍둥이 동생의 영향으로 권투 선수가 된다. 그러나 고교 졸업 후에는 소위 백수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실제 공사를 하는 건건축 일, 소위 '노가다'를 하게 된다. 우연히(?) 건축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인해 그는 드디어 길고 긴 오랜 방황에서 자기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독학과 답사로 세계 최고 건축가의 반열에 들어 가게 된 것이다. 찬바람이 매서웠던 1987년 겨울, 대학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어느 날 후배로부터 한 일본 건축가가 내년 초 강연을 하는데 특별

  •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것을 주심포형식(柱心包形式)이라고 부른다. 공포형식으로 보면 포식공포 중에 대개 3포식과 익공식이 여기에 속한다. 법주사 원통보전과 같이 7포집이면서 주심포형식인 건물도 있지만 주심포형식은 고려 이전 주삼포건축이 대부분이다. 주삼포건축은 주상포와 귀포가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고려시대 주삼포건축은 대개 맞배지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팔작지붕이기 때문에 주상포와 귀포가 서로 다르다. 현존하는 고려이전 주삼포건물과 조선시대 다포건물을 비교하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주삼포는 기둥 위에만 포를 놓기 때문에 다포에 사용되는 평방(平防)이 없다. 또 부재가 전체적으로 정연하게 가공되고 조각이 많고 인공성이 강하다. 맞배지붕이 대부분이며 천장을 특별히 가설하지 않아 서까래가 노출되어 보인다. 장혀도 다포형식처럼 긴 것을 쓰지 않고 포 위에서만 짧은 것을 사용한다. 그래서 장혀(長舌)에 대비되는...

  • 고주와 평주 사이 툇간에 놓인 마루를 가리킨다. 한옥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나야 하기 때문에 내외부 공간 사이에 완충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완충공간이 바로 퇴이고 퇴에 깔리는 마루가 툇마루이다. 툇마루는 외부에 개방되어 있으면서 안방과 건넌방, 부엌 등의 동선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잠시 걸터앉아 옷도 털고 신발도 정리할 수 있는 생활의 완충공간이기도 하다. 또 추운 겨울 밖에서 방안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체적, 환경적 완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툇마루는 쓰임이 별로 없는 버려진 공간처럼 보이지만 한옥에서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툇마루 중에서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기 위해 마루를 높여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고상마루(高床抹樓)라고 한다. 툇마루 윤증고택 고상마루 유계화 가옥

  • 성벽 주변에 인공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성곽시설이다. 해자(垓字)는 호(壕) 또는 호참(壕塹)이라고도 불렀다. 경주와 같이 서남북에 하천이 있는 곳은 이것을 자연해자로 이용했으며 그렇지 않은 성곽에서는 인공해자를 팠다. 산성이 많은 한국에서는 물을 채우지 않는 해자가 많았는데 이를 간호(乾壕) 또는 황(隍)이라고 한다. 해자는 성벽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하며 방어목적 이외에 성벽 기초의 침수나 지하수위를 조절하는 역할도 있다. 또 해자에는 마름쇠(菱鐵)나 나무꼬챙이 등의 장애물을 설치하여 도강을 막았다. 해자 인도 아그라성 해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 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이다. 마치 책을 엎어놓은 것과 같은 형태이다. 간단하고 만들기 쉬워 가장 먼저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삼포건물인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무위사 극락전, 도갑사 해탈문 등이 모두 맞배지붕이다. 맞배지붕의 구성은 간단하지만 측면지붕을 많이 빼주지 않으면 비바람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5포 이상의 포식건축이 유행하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측면에도 지붕이 있는 팔작지붕이 성행하였다. 주요 정전은 팔작으로 하고 행랑채나, 회랑, 부속채 등 규모가 크지 않거나 길고 측면 단칸인 건물에서 맞배지붕을 즐겨 썼으며 사당은 규모와 포의 종류에 관계없이 맞배지붕을 즐겨 썼다. 조선시대 맞배지붕이 고려시대와 다른 점은 측면에 풍판을 달아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맞배지붕 경주향교 대성전 맞배지붕...

  • 다포형식(多包形式)은 기둥 상부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열한 건축양식을 말한다. 이때 기둥 위에 올라간 공포를 주상포(柱上包)라 하고 기둥 사이에 놓인 포를 간포(間包)라고 한다. 간포는 주간 크기에 따라 2-3개가 오기도 하며 모양은 주상포와 같다. 그러나 귓기둥 위에서는 정면과 측면 첨차가 연이어 걸리고 45도 방향으로도 첨차가 사용되므로 모양이 다른데 이 부분에 놓이는 공포를 귀포(耳包)라고 한다. 다포형식은 5포 이상의 포식건축에 많이 사용되며 고려 말에 나타나서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주심포형식에 비해서 지붕하중을 등분포로 전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법으로 작은 부재를 반복해 사용하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추구한 건축양식이다. 다포형식은 간포를 받치기 위해 창방 외에 평방이라는 부재가 추가되었으며 주로 팔작지붕이 많다. 따라서 내부에서 측면 서까래 말구가 노출되어 보이므로 이를 가리기 위해 우물천장을 가설하는 경우가 많다. 주심포에 비해...

  • 배를 일정 간격으로 늘어놓고 그 위에 판재를 건너질러 만드는 부교(浮橋)의 일종이다. 조선 정조대왕은 화성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겨 놓고 자주 능행을 다녔다. 능행을 위해서 한강을 건너야 했고 그때마다 배다리(舟橋)를 설치했다. 왕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너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의 배를 모아 임시다리를 만든 것이 배다리인데 임시로 설치한다고 해서 대충 만들지는 않는다. 배에 귀틀을 건너지르고 그 사이에 청판을 깔아 우물마루 깔듯이 상판을 만들었다. 또 난간을 설치하고 단청까지 한 고정된 목교 못지 않은 격식이 있다. 배다리를 설치할 때는 한강에 떠다니는 조세선을 비롯한 관선이 동원되었지만 상선과 개인 배들도 부역으로 동원되었다. 배다리를 만드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주교사(舟橋司)라고 하는 관청을 별도로 두기도 했다. 배다리 〈노량주교도섭도〉 배다리 《정리의궤》

  • 봉(烽)은 밤에 봉화(烽火)를 올려 연락하는 것을 말하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봉수대(烽燧臺)는 지형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적의 동태를 조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수원 화성의 봉수대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데 전체를 벽돌로 축조했다. 마치 돈대처럼 봉수대를 만들었다고 하여 수원 화성에서는 이를 봉돈(烽墩)이라고 부른다. 봉수대에는 봉화를 올릴 수 있는 다섯 개의 원추형 시설을 했는데 이를 화두(火竇)라고 한다. 화성 봉돈 무악동 봉수대 봉돈 외도 《화성성역의궤》 봉돈 내도 《화성성역의궤》

  • 인방(引防)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로재를 말한다. 즉 기둥을 상중하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러 기둥을 일체화시켜 횡력을 견디게 하는 구조적인 역할을 한다. 인방은 보통 상중하 세 단으로 걸리며 위치에 따라 상인방(上引防), 중인방(中引防), 하인방(下引防)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기둥과 인방의 맞춤은 조선시대에는 쌍장부맞춤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인방재는 기와까지 얹고 난 다음 구조가 안정된 후에 설치한다. 구조부재는 위에서 아래로 끼워 조립하지만 인방재는 옆에서 끼운다. 민도리집에서는 대부분 장혀가 상인방을 대신한다. 창호가 달리는 경우에 인방재가 설치되는 높이가 조절된다. 이 경우 상인방은 문상방이 되고 하방은 문지방(門地防)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중방은 문설주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창이 달리는 경우 문지방을 높게 만들기 때문에 머름을 구성하기도 한다. 또 문칸의 하인방은 문지방 역할을 하며 출입의 편의를 위해 가운데가 낮고...

  • 사찰 정문으로 기둥이 일렬로 서있는 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건축에서 삼중문(三重門)제도가 도입된 고려 중기 이후라고 추정된다. 삼중문제도는 일주문과 중문인 사천왕문, 해탈문을 길게 늘어놓음으로써 대웅전에 다다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고 공간의 리듬감과 종교적 신비감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일주문은 문짝이 없다. 물리적인 통제의 문이 아니라 마음의 문이라는 의미이다. 일주문은 사찰의 상징처럼 되어 이제는 모든 사찰에서 일주문을 만들고 있다. 일주문은 보통 두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단 칸 일주문이 보편적이며 지붕은 맞배와 팔작 등으로 다양하고 대개는 다포를 올려 화려하게 꾸민다. 범어사 조계문(일주문)은 3칸으로 보기 드문 형식이며 하부의 거친 돌기둥과 일주문 가구의 육중함이 조화를 이뤄 거칠면서도 정제된 장중한 아름다움이 있다. 일주문 송광사

  • 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것과 같은 모습의 지붕이다.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나타난 지붕이다. 팔작지붕 초기에는 맞배지붕 측면에 눈썹지붕을 달아 측면의 약점을 보완한 지붕이나 우진각에 맞배를 올려 지붕면이 분리된 형태의 지붕이 과도기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두 개의 지붕면이 합쳐져서 지금과 같은 팔작지붕이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팔작지붕은 측면에 삼각형의 합각벽이 생긴다. 그래서 팔작지붕을 합각지붕이라고도 한다. 팔작지붕은 조선시대 권위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지붕형태이다. 위계질서가 가장 높다고 생각하여 규모에 관계없이 중심건물은 팔작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맞배에 비하여 지붕가구에 소용되는 목재 소요량이 30% 정도 많아 목재가 부족한 조선 후기 사찰건축에서는 하부가구는 그대로 두고 지붕만 팔작을 맞배로 고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팔작지붕은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춘 지붕형태로...

  • 흘림기둥은 기둥 위아래의 지름을 달리하는 것을 말하며, 모양에 따라 다시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으로 나뉜다. 배흘림기둥은 기둥하부에서 1/3지점이 가장 굵고 위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곡선적인 흘림을 갖는 기둥을 말한다. 민흘림기둥은 기둥하부가 기둥상부보다 굵은 사선흘림을 갖는 기둥을 말한다. 대개 배흘림기둥은 원기둥이 많고 민흘림기둥은 사모기둥이 많다. 흘림기둥은 주로 큰 건물이나 정전건물에서 사용했는데 이유는 기둥이 안정되어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전건물에서도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는데 이를 엔타시스(Entasis)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건축도에서 배흘림기둥이 묘사되어 있음을 볼 때 열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 말까지 이어진다. 현존하는 건물 중에서 고려시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과 조선시대 대부분의 정전건물에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강릉...

  • 툇마루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으나 차이가 있다. 툇마루는 평주 안쪽에 만들어지지만 쪽마루는 평주 바깥쪽에 만들어진다. 퇴칸이 없는 부분에서 툇마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평주 밖으로 덧달아낸 마루를 뜻한다. 툇마루에 비해 폭이 좁으며 우물마루가 아닌 장마루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쪽마루는 보통 건물 측면이나 뒷면에 창호가 있는 부분에 부분적으로 가설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동바리기둥을 사용해 지지한다. 쪽마루 의성김씨 종택 쪽마루 윤증고택

  • 고대 사원에서는 절 맨 앞에 당(幢)이라는 좁고 긴 깃발을 걸어 사찰의 행사를 알렸다. 이때 당을 거는 깃발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지지대가 당간지주(幢竿支柱)이다. 당간은 대개 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 돌로 만든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당간을 철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공주 갑사, 청주 용두사지, 보은 법주사, 안성 칠장사 등에서 아직 남아있는 철당간 유적을 볼 수 있다. 또 담양 읍내리 석당간과 나주 동문 밖 당간은 돌로 만들어진 특수한 사례를 보여준다. 당간지주는 바닥에 방형의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두 개의 지주석을 세워 구성하는데 대개 기단석(基壇石)은 장방형이고 측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된다. 기단석 위에서는 길게 홈을 내어 양쪽에 석주를 세우고 가운데는 당간을 받칠 수 있는 받침석을 놓는다. 양쪽 석주를 당간지주라고 하며 당간지주에는 당간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위아래와 중간에 구멍을 뚫는데 이때

  • 1622년경에 지어진 《어우야담(於于野譚)》에는 잡상을 십신(十神)이라고 하여 이름이 순서별로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1920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와도(像瓦圖)〉에도 잡상 그림과 명칭이 나온다. 종류는 같으나 순서만 다르다. 조선시대 건축준공보고서인 《창덕궁수리도감의궤》(1647)에서는 잡상 명칭으로 손행자(孫行者), 손행자매(孫行者妹), 준견(蹲犬), 준구(蹲狗), 마룡(瑪龍), 산화승(山化僧), 악구(惡口) 등 《어우야담》이나 〈상와도〉와는 다른 이름들이 보인다. 잡상에서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후대의 일로 추정된다. 그 의미도 처음에는 길상과 수양의 의미였다가 차츰 화마를 제압한다는 벽사의 의미로 바뀌어갔다고 할 수 있다. 〈상와도〉나 《어우야담》의 잡상 순서는 건물에 올라가는 순서이기도 하지만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열 개의 잡상들은 각기 특성이 있어서 역할이 달랐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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