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尹氏)의 복위 문제가 발단이 되어 훈구•사림 중심의 부중(府中)세력이 화를 입은 사건. 연산군은 임사홍(任士洪)의 밀고로 자신의 생모가 폐비•사사(賜死)된 일을 알고, 정여창(鄭汝昌)•남효온(南孝溫) 등을 부관참시하고, 김굉필(金宏弼) 등 10여 인을 사형시켰으며, 수 십명의 관리들에게 실형을 가했음.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포악하고 잔인한 복수심에서 폭발한 사건으로 보기 쉬우나, 실상은 조정내 신하간의 암투가 요인이었음. 곧 성종 때 양성되어 유교적 왕도정치를 추구한 사림들과 연산군의 방종과 학정을 통하여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자 한 신하들간의 정치 투쟁이었음. 이 사화를 계기로 새로운 정치 변동과 정치 문화가 요청되어, 마침내 중종반정이 일어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