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gks.org   »   [go: up one dir, main page]

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 피카소 회화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이름으로 스페인 내란 중, 1937년 4월 26일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독일 비행기가 이 마을을 맹폭하여 2000여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다.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가 동년의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관을 위해 그 부조리와 비극을 테마로 약 2개월의 단기간으로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시켰다. 전쟁의 광포성과 운명의 장난 밑에 무력한 인간의 비참함이 투우에서의 빛과 어둠의 상극극(相克劇)을 빌어 상징화되어 있다. 오랫동안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피카소의 유지에 따라 1981년 스페인으로 반환되었다. 유채화, 349cm×776.6cm.

  • 파퓰러 아트 (Popular Art, 대중예술)를 줄인 말로서,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의 한 경향을 가리킨다. 그 발단은 매스 미디어에 주목한 1950년 초의 리차드 해밀튼 등의 영국작가였으나, 반예술적인 지향(志向) 밑에 신문의 만화, 상업디자인, 영화의 스틸(still), TV 등, 대중사회에 있어서 매스 미디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주제 삼은 것은 뉴욕의 팝 아티스트들이다. 자스퍼 존스, 라우센버그(⇒네오 다다)를 선구자로 하고, 리히텐슈타인, 워홀, 올덴버그, 로젠퀴스트, 웨세르만, 시걸 등이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팝 아트는 서브 컬처나 풍속에 접점(接點)을 구한 1960년대 미술의 큰 물결 중 하나로, 미국 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더욱이 세계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피로스(papyros), 라틴어로는 파피루스(papyrus). 이집트 특산의 카야츠리그사 과(科)의 식물(학명 Cyperus Papyrus L.), 또는 이것을 재료로 해서 만든 필기재료(일종의 종이)와 이것에 쓴 문서 등을 뜻한다. 파피루스 풀(草)은 현재 수단 령의 나일 강 상류에만 있으나 고대에는 이집트에 무성하여 하이집트 지방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줄기는 그물, 매트, 상자, 샌들, 경주(輕舟) 등의 재료가 되었으며 한데 묶어서 건축용 기둥으로도 쓰였다. 그 모양을 본딴 석주(파피루스 기둥)도 있다. 파피루스 지의 제조법은 줄기를 얇게 갈라 표면은 옆으로 뒷면은 세로로 늘어놓고, 전체를 강하게 두들겨 건조시켰다. 용도에 따라 옆으로 적당한 길이로 이어서 사용했다. 왕가에서 제조, 전매한 듯하며 수출품으로 중요시됨. 파피루스 지에 필기한 서체로는 히에로글리프도 사용됐으나(특히 종교문서일 때) 주로 히에라틱이나 데모틱이 사용되었다. 보통 흑색잉크(

  • 지구라트는 다른말로 성탑(聖塔), 단탑(段塔)이라고도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각지에서 발견되는 건축물로 일종의 신전이었다. 하늘에 있는 신(神)들과 지상의 인간들과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초기부터 지표보다 높게 설치하였으며 후대에 올수록 차차 높아지게 되었다. 정상부는 ‘하얀집’이라 하여 신상을 모셔 놓은 성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고대에서 이와 필적할 규모의 건축물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밖에 없는데, 피라미드가 직선상의 통로를 갖는데 비하여 지구라트는 지그재그의 곡절통로로 된다. 수메르 초기왕조시대(B.C. 2700~B.C. 2350)에는 1층에 테라스 형태가 있었으나 우르 제3왕조시대(B.C. 2100~B.C. 2000경)에는 3층의 테라스를 겸한 탑이었다. 신바빌로니아시대(B.C. 7~B.C. 6세기)의 바빌론에 세워진 지구라트는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8층이었다 함.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전설의 근원이라 생각됨.

  • 스케치와 같은 뜻. 또는 건축, 조각, 회화, 디자인의 최초의 구상을 생각나는대로 그린 소묘. 작가에게 있어서는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선묘로 완성한다.

  • 1. 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으로 사각추형의 구축물을 말한다. 고왕국시대에서 신왕국시대에 걸쳐서(B.C. 2826년경~B.C. 1085년경) 건조되었고, 주로 왕묘로 채용됐다. 피라미드의 본체(本體)는 각면이 동서남북으로 향한 각추형(角錐形)의 돌이나 일건벽돌 즉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묘실은 거의 중앙에 있으나 그 높이는 지하, 저면(底面)의 위, 본체 내부 등 각각 다르다. 묘실 입구는 북쪽면의 어느 정도의 높이에 혹은 북쪽 지표면에 있다. 매장 후 통로는 돌로 채워지거나 돌문으로 엄중히 봉쇄되어 입구까지도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형식은, 제3왕조 제세르 왕(B.C. 2660년경)의 사카라의 계단형 피라미드, 제3왕조 말 내지 제4왕조 초 스네프루(B.C. 2650년경)의 다하슈르의 피라미드 2기(굴절피라미드 및 북피라미드) 등을 거쳐, 제4왕조시대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완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쿠푸 왕(B.C. 2580년경)의 제1피라미드는 저변이 사방

  • 고대명 폼페이이(Pompeii). 남이탈리아의 캄파니아 지방, 나폴리의 남동 약 23km에 있는 고대도시 유적. 베스비오 산의 분화에 의해서 형성된 화산대지의 남단에 있으며, 사르노 강의 하구에 가깝다. 기원 79년의 베스비오 산 분화로 매몰됐지만, 1748년 발견된 이래로 발굴이 진행되어 오늘날 그 전모를 거의 드러내고 있다. 폼페이의 역사는 B.C. 7세기 경부터 산악민족이 오스크 인이 취락을 이룬데서 시작되어 B.C. 6세기에는 키메(쿠마)의 그리스 인에 의해서 그리스 도시의 체재가 정비되었다. B.C. 5세기에는 한때 카푸아의 에트루스크 인의 영향하에 들어가지만, 또다시 그리스 인의 수중에 들어간다. 그러나 B.C. 425년 이후는 중부 이탈리아의 아페닌 산맥을 조상의 땅으로 여기는 사므늄 인이 지배하는 도시가 된다. 그때까지의 고고 ∙ 미술유품은 삼각광장(三角廣場)의 도리스식 신전을 장식하고 있던 테라코타 제 처마장식, 에트루스크 풍의 주두(柱頭, 제6가구[街區]

  • 로카이유에서 비롯된 말로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장식의 양식. 바로크 양식에 이어 신고전주의보다 앞선 양식으로 당시의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미술전체에 널리 걸친 양식을 가리킴. 직선을 싫어하고 휘어지거나 굽어진, 정교한 장식을 애호하는 점에서는 바로크와 공통하나, 힘찬 후자에 비해서 로코코는 오히려 우아 경쾌하고 S자형의 곡선, 비상칭적인 장식, 이국적인 풍취, 특히 중국풍취(⇒시누아즈리)가 두드러짐. 이에는 바로크 시대의 장엄하고 화려한 궁전에 대해, 신시대의 사교장인 우아한 살롱의 등장과 유력한 궁정부인들의 취미에서 비롯된 영향도 컸음. 어둡고 무거운 벨벳 대신, 밝은 빛깔의 견직물이나 비단(錦)이 유행한 것도 부인들이 즐겨 입는데서 연유한 것임. 로코코의 발생지이며 중심이기도 했던 프랑스에서는 ‘로코코’라는 어휘를 좌우균정(左右均整)을 깨뜨린 장식 모티브의 배치라든가 곡선 사용을 강조하는 독일 바로크에서 생겨난 양식에 대해 주로 이 말을...

  • ‘추방하는 것’이란 뜻. 초현실주의에서 쓰이는 말로,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것을 뜻함.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물건이 있는 표현을 의미한다. 그 결과 합리적인 의식을 초월한 세계가 전개된다.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eamont, 1846-70)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라는 유명한 어구가 그 전형이다.

  • 태양이 운행하는 원대(圓帶)를 성좌(궁)에 따라 12등분한 화상대(畵像帶)로, 황도대, 수대, 황도12궁라고 한다. 백양좌(백양궁), 황소좌(금우궁), 쌍둥이좌(쌍자궁), 사자좌(사자궁), 해좌(거해궁), 을녀좌(처녀궁), 천평좌(천평궁), 전갈좌(전갈궁), 사수좌(인마궁), 염소좌(마갈궁), 수병좌(보병궁), 어좌(쌍어궁)로 되어 있다. 점성술은 천계와 지상생활을 결부시켜 일어났다. 헬레니즘시대 이후 그리스 천문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론화되고 동시에 카르데아인(人) 혹은 마기라 부르는 종교가들에 의하여 오리엔트와 지중해세계로 확대되었다. 도상으로 확립된 것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이며, 이시스 등 이집트신의 신전장식과 미라의 목관에 채색장식으로 쓰였다. 황도대의 점성술은 의인화된 사계와 사방위의 도상과 결부되어 종교력(宗敎曆)이 되고, 또한 인체의 각 부분과 기질, 생년월일과 관련시켜 운을 점치는 것으로 되었다. 이와 같은 사상은 동방으로도 확대되어 중앙아시아에서는 불

  • 북한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고려시대의 수도였다. 주위가 구릉(丘陵)에 둘러싸였고 송도(松都)라 불리기도 했다. 고려태조(王建, 재위 918~943)는 즉위한 다음 해에 철원(鐵原)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개주(開州)라 칭하다가 나중에 개성(開城)으로 명칭을 고쳤다. 고려의 멸망 때까지 국도(國都)로서 번영했다. 현종(顯宗, 재위 1009~31)때에 거란족(契丹族)의 침공에 대비하여 구릉지에 토루를 쌓고 나성(羅城)이라 하였다. 왕궁은 만월대(満月台)에 있었다. 내성(內城)은 조선 태조(李成桂, 재위 1392~98)때에 석축으로 반월성이 완성되었고, 남대문은 그 당시의 유구(遺構)이다. 부근 구릉지대에는 왕릉과 고분이 산재하며 왕릉은 방형(方形),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묘로 되어 있다. 수락암동(水落岩洞)고분과 법당방(法堂坊) 고분 등에는 벽면십이지상(壁面十二支像)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묘의 전면(前面)에는 석인(石人)이 서 있다. 시의 동쪽에는 여말(麗末)의

  • 최종적으로 완성해야 할 그림과 설계도 등을 위해 작성하는 초벌그림(下畫), 약화(略畫), 화고(畫稿) 등의 뜻. 데생(소묘)과 수채화, 혹은 유화 에스키스도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최종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점씩의 에스키스가 있다.

  • 일반적으로 길게 둘러댄 마루. 건물의 전체, 세방향, 또는 안뜰이나 이와 비슷한 공간의 둘레를 에워싼 행랑복도(열주랑⇒콜로네이드). 옛부터 즐겨 쓰인 이러한 형식의 건축은 고대 이집트의 신전이나 장제전(葬祭殿)의 안뜰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리스 신전은 신실(柛室, 나오스)의 안팎으로 기둥을 둘러 세운 열주랑(列柱廊) 건축형식이 흔할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로부터 신역(神域)을 두른 주벽(周壁, 페리볼루스 peribolus[라])을 회랑형식으로 시공한 것이 눈에 띄고, 로마 신전의 성역(聖城)이나 공공광장(포룸)에도 그 형식이 전해져 있다. 로마 건축의 포르티쿠스(⇒포르티코)는 반드시 회랑형식은 아니지만, 신전의 유무를 불문하고 안뜰의 전체 둘레나 세변을 열주랑으로 둘러싸게 한 형식의 건물이 많이 세워졌다. 초기기독교 성당의 아트륨도 회랑이 갖추어져 있고, 이슬람 건축에도 전해져서 많은 모스크 또는 궁전에 회랑형식의 안뜰을 갖추고 있다. 서양 중세의 수도원에서...

  • 한자(漢字) 서체의 일종. 정서(正書) 또는 진서(眞書)라고도 함. 옛날에는 예서(隸書)에 포함되었고 파책이 없는 방정(方正)한 서체를 일컬어 말함. 기원은 행서(行書)보다 늦어 4세기 초두에 소위 ‘삼과절(三過折)’의 필법을 갖춘 서체가 나타나서, 육조시대에는 정서(正書)·진서(眞書)의 명칭이 붙었다. 당대(唐代)이후 정서나 진서와 같은 뜻으로 쓰임.

  • 1. 도료의 일종. 에나멜 페인트(enamel paint[영])라고도 한다. 기름와니스(수지와 건성유를 가열, 융합하여 건조제를 첨가하고 석유계 용제로 희석한 와니스)에 안료를 넣어서 섞은 것. 유성페인트에 비하여 건조가 빠르고 도막(塗膜)은 더욱 평활하고 광택이 풍부하다. 2. 도자기 윗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연유계의 유(釉). 3. 프랑스어의 에마유와 동일. (⇒칠보, 법랑, 에마유)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