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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시인 이용악, 지금 그가 그립다”

김여란 기자

곽효환·이현승 시인, 이경수 교수 ‘이용악 전집’ 발간

▲ 탄생 100주년 기념 미수록 시·신문 자료 월북 후 작품 총망라
시인 백석과 함께 1930년대 대표… 식민 치하·분단 등 당대 모습 정확히 짚어

“이용악 시는 품이 넓고 건강합니다. 서정성이 짙으면서도 사회적 의제를 그 안에 숙성시키고 있어요.”(이현승 시인)

식민 치하 고통스러운 삶을 서정적 언어로 새긴 ‘북방의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전모를 담은 전집이 나왔다. <이용악 전집>(소명출판)에는 이용악이 출간한 모든 시집과 미수록 시는 물론, 월북 이후 작품과 산문 자료까지 총망라됐다. 시인 곽효환씨(48), 중앙대 국문과 교수 이경수씨(47), 시인 이현승씨(42)와 각 대학 연구자들이 이용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년간 작업한 결과물이다. 1988년 나온 윤영천의 <이용악시전집>은 월북 전 작품만 수록됐고 절판된 지 오래다.

암울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시인 이용악, 지금 그가 그립다”
암울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시인 이용악, 지금 그가 그립다”

이용악의 시는 쉬운 언어로 심상과 현실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그리움’ 중) 1945년 쓰인 이 시는 2015년 겨울 현재 광화문 교보빌딩 현판에 걸려 지나는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북한에서 낸 <리용악시선집>에도 이 시가 포함돼 있는데 ‘너를 남기고 온(…)’ 부분은 다르게 바뀌어 있다. 이처럼 전집에는 한 시가 각기 다른 시집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이용악이 낸 모든 책 내용을 전부 수록했다.

이용악과 백석은 우리 근대시가 완성된 1930년대 대표 시인으로 꼽힌다. 둘 다 1988년 해금 때 국내에 알려졌고 뛰어난 문학적 성취로 주목받았지만, 백석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데 비해 이용악은 일반 독자들에게 거의 회자되지 않았다. 그럼 지금 왜 다시 이용악인가. 이용악과 백석을 함께 연구한 편자들은 “지금이야말로 이용악이 필요한 시대”라고 입을 모았다.

“고통스러운 1930년대에 백석은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했고, 이용악은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했어요. 소련 붕괴 후 탈이데올로기 시대에는 우리 사회에 백석이 더 매력적이었겠지요. 이제 2015년, 살기가 각박하고 괴로워진 상황에서는 시대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기층의 삶에 관심을 가진 이용악의 시가 위로가 될 거라고 봅니다.”(곽효환)

이경수씨는 지난해 강의에서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접근한 이용악의 시’라는 흥미로운 학생 발표를 봤다. “학생들이 새터민, 외국 유학생, 고향을 떠나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이용악의 시를 읽혔어요. 이용악에 대해 정보가 없는 이들인데도 그의 시에 마음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놀랐습니다.”

2년여 작업을 거쳐 <이용악 전집>을 낸 시인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 이경수 중앙대 교수, 시인 이현승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왼쪽부터)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년여 작업을 거쳐 <이용악 전집>을 낸 시인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 이경수 중앙대 교수, 시인 이현승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왼쪽부터)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해방기 이용악은 삶의 현장에서 시를 낭독하는 ‘거리의 시인’이기도 했다. 이경수씨는 “해방기 잡지와 신문에 나온 온갖 거리 낭독회에 이용악의 이름이 참 많았다”며 “거리에서 낭독되는 시 특유의 힘과 문학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분단 앞에서 시인의 고뇌는 더 컸다. “누가 우리의 가슴에 함부로 금을 그어 강물이/ 검푸른 강물이 굽이쳐 흐르느냐(…)// 모두들 국경이라고 부르는 삼십팔도에/ 어둠이 내리면 강물이 들어서자/ 정강이로 허리로 배꼽으로 모가지로/ 마구 헤치고 나아가자”(‘38도에서’ 중, 1945)

월북 이후 이용악이 발표한 시는 체제 선전을 위해 쓴 게 다수다. 월북 전 작품과 비교하면 문학적 한계는 분명하다. 편자들은 “친체제적인 작품 속에서도 이용악과 백석은 다른 북한 시인과는 구별된다. 정부 사업에 대해 시를 써도 이용악은 개별화된 사람 이야기로 표현하고, 특유의 서사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북 이후 자료를 보면 예술가로서의 이용악의 고뇌를 발견할 수 있다. 1957년 북한 ‘문학신문’에 실린 작가 좌담회에서 이용악은 문학에 현실을 반영하는 문제에 대해 “솔직히 말한다면 서정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큰 것에만 욕심을 내서 장편 서사시를 쓰겠다고 대든다”고 의견을 낸다. 또 ‘사랑이나 자연을 노래한다고 도식주의를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요지로 말하기도 했다.

편자들은 이용악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고백했다. 곽씨는 “시인은 예술가인 동시에, 당대 사람들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내야 하는 지식인이다. 그 점에서 이용악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현승씨는 “공부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일인데 이용악과 백석의 텍스트는 빛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이용악처럼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동시에 작품의 매력이 계속되는 건 드물다. 연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텍스트”라고 말했다. 모두 40대인 세 사람은 현재 이용악 연구자 중에서 젊은 축이다. 이들은 <이용악 전집>을 계기로 이용악 연구가 생기를 되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금까지가 백석에게 벼락같은 축복의 시기였다면, 이제 이용악에도 그런 축복이 내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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